본문 바로가기
  • 전국 사찰 & 함께 가고 싶은 곳
여행-경북

영천 은해사 중암암

by phd100 2021. 7. 24.

 

중암암(中巖庵)

경북 영천시 청통면 팔공산(八公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심지왕사가 창건한 은해사(銀海寺)의 산내암자(山內庵子)이다.

신라시대 화쟁국사 원효(元曉)스님 (617~686)께서 토굴을 짓고 정진한 곳으로 널리 전해진 곳에 신라 광덕왕 (光德王) 9년 (서기 834년)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창건하였다. 그 뒤 꾸준히 수도승들의 수행처로 이용되어 오다가, 1834년(순조 34) 우일(宇一)과 유엽(有曄)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과 요사채·객사(客舍)가 있으며, 문화재로는 경상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332호 은해사 중암암 삼층석탑과 석등(石燈)이 있다. 이 중 3층 석탑은 창건 당시에 건립된 것이라고 하는데 높이 3.7m이다.

석등은 높이 1.2m의 장방형으로 장식이나 기교를 가하지 않은 특이한 석등이다. 이 밖에도 도괴된 부도 1기가 있다.

절 주변에는 삼인암(三印巖) · 건들바위 · 장군수(將軍水) 등이 있다.

 

이들 중 건들 바위에는 전설이 깃들여 있다. 옛날 한 승려가 참선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큰 소리가 나서 밖으로 나가 보니, 큰 바위가 암자로 굴러떨어지려고 하므로 급히 법당에 들어가서 기도를 드리자 바위가 떠올라 훨씬 뒤의 안전한 자리로 옮겨 앉았다고 한다.

또, 장군수는 김유신(金庾信)이 17세 때 이곳에서 수련하면서 마셨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물맛이 매우 뛰어난 석간수이다.

 

중암암 삼층석탑(銀海寺 中巖庵 三層石塔)은 중암암 불당에서 약 20m가량 떨어진 암벽 아래 조그마한 마당에 세워져 있다.

 

석탑이 있는 중암암은 불당이 암벽 아래에 암석 틈에 붙어 있어서 중암암(돌구멍절)이라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불당지 한켠에는 불당 창건 때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어골문(魚骨文) 기와 조각이 쌓여 있다.

 

탑의 양식은 통일신라의 전형을 따르고 있으나 기단부가 약화되었고, 옥개석 낙수면의 경사가 심해지고 전각의 반전도 많아진 편이다. 또한 전체 규모가 작아져 장식성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 석탑의 조성시기는 이곳 암자의 창건 시기와 같은 고려초기로 추정된다. 손상을 입지 않았고 보존이 깨끗하여 가치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중암암 삼층석탑은 큰 바위 사이 협소한 대지에 있어 입지 조건이 기이하며, 간결·소박하고 균형 잡힌 모습을 갖춘, 매우 뛰어난 석탑에 속한다.

 

돌구멍으로 들어갔다. 돌구멍으로만 나올 수 있는 돌구멍 절이 중암암이다.

대문이 돌구멍인 중암암은 죄를 지은 사람은 통과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어떻게 이곳에 절을 지었을까 하는 의문을 던지는 곳이다.

중암암은 돌구멍 절인 만큼 돌에 대한 이야기와 유물이 많다. 국내에서 가장 깊다는 해우소도 돌구멍 속에 있으며, 극락굴도 돌 틈새를 지나야 들어갈 수 있다.

욕심이 가득한 사람은 이 틈새를 결코 빠져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또한 중암암은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 장군이 수련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세 살 먹은 어린이가 흔들어도 흔들린다는 건들바위, 바위틈을 비집고 뿌리를 내리며 만년을 살았다는 만년송, 김유신이 열일곱 살 때 이곳에서 수련하면서 마셨다하여 ‘장군수’라고 불리는 석간수, 이런 것들이 기암괴석과 빼어난 경치와 더불어 중암암을 자랑하고 있다.

 

건들바위는 둥그런 사발을 엎어 높은 듯한 모양인데, 어느 날 밤 바위에서 우뢰소리가 나 주지스님이 놀라서 달려가보니 바위가 암자를 덮칠 듯이 요동을 치고 있어, 부처님께 열심히 기도하였더니 바위는 움직임을 멈추고 원래 위치보다 북쪽으로 옮겨 현재의 자리에 있게 되었다고 한다.

 

창건이래 별다른 변천 사실은 알 수없으나, 삼층석탑과 석등 그리고 부도 등이 파손된 채 남아있어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옛날에 통도사와 해인사, 그리고 돌구멍 절에서 수행을 하고 계시던 세 분의 도반 스님이 한자리에 모여 각자의 절을 자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제일 먼저 통도사에 계시는 스님이 "우리 절은 법당 문이 어찌나 큰 지 한번 열고 닫으면 그 문지도리에서 쇳가루가 1말 3되나 떨어진다"고 하며 은근히 절의 규모를 법당 문 크기에 빗대어 자랑을 하셨다.

 

이어 해인사에서 오신 스님이 "우리 해인사는 스님이 얼마나 많은지 가마솥이 하도 커서 동짓날 팥죽을 쑬 때는 배를 띄어야만 저을 수 있다"고 하며 절의 규모와 큰 솥이 있음을 자랑하였다고 한다.

 

두 스님의 자랑을 듣고 잇던 돌구멍절 스님은 절의 규모 등으로 자랑 할 게 없자, "우리 절 뒷간은 그 깊이가 어찌나 깊은지 정월 초하룻날 볼일을 보면 섣달 그믐날이라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라고 자랑을 하여 한바탕 크게 웃었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중암암 스님이 제일 큰 허풍으로 도반 스님들의 절 자랑을 제압했다고 볼 수 있지 만 벼랑 위 바위 속에 만들어진 중암암 해우소가 얼마나 깊은가를 상상해 볼 수 있는 설화다.

 

중암암의 또 다른 특색은 여느 절들과는 달리 영가재를 지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웬만한 절에서는 돌아가신 분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천도재나 49재 등을 지낸다.

그런데 중암암에서는 영가(죽은이)를 위한 재는 일체 없다고 하니 별다른 뭔가가 있는 듯하다.

 

♡ 중암암 극락굴(화엄굴)

3층 석탑 옆으로 들어서는 극락굴은 누군가의 안내가 없으면 찾기도 힘들고, 설사 찾는다 하여도 선뜻 들어서기가 힘든 곳일 듯하다. 사람 하나 겨우 들어갈 정도의 입구로 들어가 2∼3m쯤 안으로 들어서면 우측으로 굴이라기보다는 틈새라고 해야 할 작은 공간이 나온다.

이 틈새로 들어서 몇 걸음 가다보면 좌측으로 꺾어지는 틈새가 나오고 그 틈새를 따라 다시 꺾어지면 처음의 자리에 서게 된다. 중간쯤에는 몸을 숙여야 하는 공간도 있다.

 

욕심으로 채웠건 허영심으로 채웠건 몸집이 부풀려진 사람은 엄두도 낼 수 없는 그런 공간이다. 그러나 그 굴을 빠져 나오며 느끼는 쾌감은, 말 그대로 극락을 다녀온 기분이다.

어둠과 좁은 공간을 돌아 나왔을 때 느끼는 해방감과 광명은 욕심과 허영심을 떨쳐버린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극락체험이다. 중암암을 가면 이 극락굴을 꼭 지나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극락굴을 한 번 지나고 나니 세상이 달리 보인다. 조강지처가 아닌 소위 세컨드는 이 극락굴을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는 속설도 있다.

 

♡건들바위

극락굴을 나와 조금 더 올라 능선의 정상에 있는 건들바위는 둥그런 사발을 엎어 높은 듯한 형상이다. 어느날 밤 바위에서 우뢰 소리가 나 주지 스님이 놀라서 달려 가보니 바위가 암자를 덮칠 듯이 요동을 치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주지 스님 부처님께 열심히 기도하니 바위는 움직임을 멈추고 원래의 위치보다 북쪽으로 옮겨 현재의 자리에 있게 되었다는 바위다. 세 살 먹은 어린이가 흔들어도 흔들린다는 전설이있지만 지금은 접근금지다.

 

♡만년송

건들바위 옆에도 사람 하나 드나들기에 딱 좋은 구멍이 있으니 이 구멍을 지나게 되면 만년송을 만나게 된다.

잘록한 몸매에 풍만한 몸매를 가진 여인네 몸처럼 둥글둥글하고 완만한 곡선을 가지고 있는 바위틈을 비집고 뿌리를 뻗으며 자란 소나무가 있으니 이 소나무가 만년송이다.

흙 한줌 없는 바위틈에서 인고의 세월을 버텨온 나무를 보고 있노라니 모진 생명력이 보이는 듯하다. 그런 모짐을 헤치며 생존하였기에 더없이 숭고해 보이기까지 하다.

 

♡삼인암

극락굴에서 만년송으로 향하는 중암암 뒷쪽 능선에 대형 바위 세개가 있으며 한 곳에 삼인암(三印巖)이 새겨저있다. 삼인은 삼법인을 의미한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변하는 것에는 자아라는 실체가 없다는 제법무아(諸法無我), 모든 변하는 것은 괴로움을 낳는다는 일체개고(一切皆苦) 세 가지를 말하며, 일체개고 대신 모든 괴로움을 없앤 열반적정(涅槃寂靜)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장군수

능선을 넘어 조금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장군수를 찾을 수 있다. 깎아 세운 듯한, 높이가 두 길이 넘는 암벽에서 흘러나온 물이 고이는 석간수가 장군수다.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 장군이 17세 화랑이었던 시절 이곳에서 수련하며 마셨다는 전설이 있는 약수이다. 중암암은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 장군이 수련한 곳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중암암 뒤쪽, 만년송 조금 아래에는 김유신 장군이 수련을 하며 기를 받았다는 전설이 있는 10평 남짓한 공간이 있다. 둥그런 배열로 늘어선 길쭉한 형태의 입석들은 마치 장군을 외호하는 호위병 같다.

 

'여행-경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산 선본사  (0) 2021.10.06
경산 갓바위  (0) 2021.10.06
칠곡 송림사  (0) 2021.04.17
경주 흥륜사터  (0) 2021.03.15
포항 보경사  (0) 2021.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