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두 정여창 고택(一蠹 鄭汝昌 古宅)
일두 정여창(一蠹 鄭汝昌)古宅은 정여창 선생이 죽은 후 선조 무렵(1570년대)에 건축됐다. 1만㎡ 정도의 넓은 집터에는 여느 양반가옥과 마찬가지로 솟을대문, 행랑채, 사랑채, 안채 등 여러 건물들이 서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사랑채는 ㄱ자 팔작집으로 돌 축대가 높직하고 추녀는 비상하려는 듯 날개를 펴서 시원스럽다. 사랑채 옆 일각문을 통해 안채로 들어서면 마당이 직사각형으로 길게 뻗어 아래채와 연결된다. TV드라마 ‘토지’의 촬영 장소였다.
조선 동방오현(東方五賢: 동방오현(東方五賢)은 우리나라의 다섯 분의 매우 뛰어난 현인을 말한다. 유교에서 말하는 것으로 성균관 대성전에 위폐가 모셔져 있다.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 사옹(蓑翁) 김굉필(金宏弼/1454~1504)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1482~1519)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1491~1553) 퇴계(退溪) 이 황(李 滉/1501~1570))중의 한분인 문헌공 일두 정영창 선생(1450-1504)의 고택은 1570년대 후손들이 중건한 것으로 상류주택의 전통 가옥 구조로 중요민속 자료이다.
41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연산군을 가르쳤고, 벼슬한지 4년 만에 안의현감으로 임명 된 뒤 바른 일처리로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으나 1498년 무오사화(연산군 4년 김일손(金馹孫) 등 신진사류가 유자광(柳子光) 중심의 훈구파(勳舊派)에게 화를 입은 사건. 사초(史草)가 발단이 되어 일어난 사화(史禍)로 조선시대 4대사화 가운데 첫 번째 사화)로 함경도에 유배를 갔다가 55세의 일기로 안타깝게 숨졌다고 한다.
좌안동 우함양이라고 불리던 학벌과 문벌이 번성했던 시대에 우함양의 기틀을 마련한 분이 바로 일두 정여창 선생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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