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전국 사찰 & 함께 가고 싶은 곳
여행-경북

포항 오어사. 원효암. 자장암

by phd100 2021. 10. 14.

 

 

 

오어사 (吾魚寺)

오어사는 경북 포항시 오천읍 항사리 운제산에 자리잡고 있는데 정확한 연대는 모르나 신라 진평왕 때 세워졌다고 전해온다.

 

처음의 이름은 항사사(恒沙寺). ‘항사’란 말을 글자 그대로 풀면 ‘갠지스 강의 모래알’이라는 뜻이 되지만 불전에서는 흔히 그 모래알처럼 무한한 수를 가리키는 비유로 쓰인다.

일연스님은 『삼국유사』에서 “전하는 말에 항하수의 모래알처럼 많은 사람들이 세속을 벗어났으므로 항사동(恒沙洞)이라 부른다”고 절 이름에 담긴 뜻을 각주로 풀이했다.

 

이곳은 신라의 4대 스님이 머무른 곳이란다.

원효, 혜공, 의상, 자장.

네 분 조사가 도를 즐기고 현담(玄談)을 나누던 때에 혜공과 자장 스님은 북쪽 산꼭대기에 머물고, 원효와 의상 스님은 남쪽의 바위 벼랑 위에 살았다.

남쪽의 바위 벼랑과 북쪽의 산꼭대기는 마치 능가산(楞伽山)1)에 오르기 힘든 만큼 오가기 어려웠다.

이에 구름(雲)을 사다리(梯) 삼아 절벽에 걸쳐놓고 왕래했으니 묘법(妙法)과 신술(神術)을 체득하지 않았다면 능히 이럴 수 있겠는가.

 

항사사가 오어사로 이름이 바뀐 경위는 물론 혜공스님의 일화에서 유래하지만 ‘판본’에 따라 그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사적」에 소개된 것 말고 또 다른 판본 하나는

원효와 혜공 스님이 각각 물고기 한마리씩을 잡아먹고 똥으로 배설된 물고기를 되살리는 시합을 벌였다. 불행히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살지 못하고 다른 한 마리만 살아서 힘차게 헤엄쳐갔다. 이를 본 두 사람은 서로 자기가 살린 고기라고 우기며 “내(吾) 고기(魚)”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일화의 정본(定本)은 『삼국유사』이다. 어느 날 원효와 혜공 두 스님이 개울가에서 물고기를 잡아먹은 뒤 바위 위에 똥을 누었다. 혜공이 그것을 가리키며 “그대의 똥은 내(나 吾) 고기(고기 魚)일게요” 하고 놀려댔다. 이 일로 말미암아 오어사라 부르게 되었다는 내용이 앞의 책 권4 「이혜동진」(二惠同塵)에 실려 있다. 다시 말해 오어사에 얽힌 혜공스님의 일화는 『삼국유사』에 바탕을 두고 조금씩 살을 붙이고 각색하여 몇 가지로 갈래를 친 것이다.

 

(지금도 오어사에는 원효 스님의 삿갓이 보관되어 있다. 요즘 여름철에 볼 수 있는 섬세한 발보다 10배나 더 정교한 풀뿌리로 짜여진 이 삿갓의 높이는 1척이고 밑의 직경은 1.5척이다. 뒷부분은 거의 삭아 버렸는데 겹겹이 붙인 한지에 붓글씨가 쓰여져 천 년 세월을 되돌아 보게 한다.)

 

단 한 채, 대웅전을 제외하곤 모든 건물이 불과 몇십 년 사이에 새로 지어진 것들이라 사적기를 쓸 무렵의 옛모습은 상상 속에 접어두는 수밖에 없다.

조선 영조 17년(1741)에 중건한 대웅전도 감흥을 자아낼 만큼 대단치는 않다. 단지 연꽃봉오리로 끝을 마감한 내부의 공포가 불꽃처럼 화려하고 국화와 모란을 새김질한 정면의 꽃창살이 조촐하게 두드러질 따름이다.

정면 가운데 칸, 곧 어간에 달린 세 짝 문은 구조가 특이하다. 오른쪽 문짝은 밖여닫이, 가운데 문짝은 안여닫이, 왼쪽 문짝은 붙박이이다.

대충 이런 정도이지만 대웅전 기단 위를 좌우로 거닐며 잡목 가득한 호수 건너편 앞산과 추녀끝에 아아하게 걸린 바위 벼랑을 쳐다보노라면 한 줄기 맑은 바람이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암자들이라고 예전의 모습을 지키고 있을 리 없다. 혜공·의상·은적 세 암자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자장·원효 두 암자가 명맥을 잇고 있으나 그도 허울 좋은 하눌타리다.

허드재비를 개비하듯 터와 이름만을 빼고는 깨끗이 새 단장을 했으니 말이다. 때문에 자장암은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만족하는 게 오히려 좋다.

절 뒤편 높고 험한 벼랑 꼭대기에 제비집처럼 오똑 올라앉아 바위와 어울리는 모습이 영락없이 관념산수화 속의 풍광이라 아래서 바라보는 맛은 그만이지만 막상 숨을 몰아쉬며 암자까지 올라가봐야 새 집, 생경한 단청말고는 볼거리가 없으니 말이다.

세 채의 건물이 멋없게 줄지어 선 원효암도 이름만 남기는 매한가지. 그래도 원효암 가는 길은 잠시 마음을 쉴 수 있는 조촐한 길이다. 특히나 잡목숲이 잎을 모두 떨구어 수근거리는 소리조차 끊어진 때 이 길을 오르면 만상 속에 홀로 선 느낌에 소슬해진다.

 

오어사에서 건너다보이는 바위 벼랑은 수직으로 100여 미터에 이른다. 여기에 꽃철이면 진달래가 바위틈을 메우며 서리서리 피어오른다. 진달래와 바위, 이들이 어떻게 어울리는지를 보고 싶거든 꽃소식을 기다려 오어사를 찾으라.

 

오어사에는 원효암과 자장암. 두 암자가 있다.

 

<대웅전>

오어사(吾魚寺)에서 만난 800년전의 용(龍)

단청색 바랜 오래된 건물이 대웅전이다. 최초 신라 진평왕 때 창건되고 영조대왕 때 중건 되었으니 300년 된 건물이다.

화려한 단청이 입혀진 처마장식에는 모서리 높이 보이는 용두가 입에 허연 뭔가를 물고 있다. 물고기인가?

대웅전 처마는 좀 특이하다.

모서리처마 이외의 대웅전 현판이 걸려 있는 정면에도 용두로 장식되고 용두위에 봉황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이 용두가 전면에 주욱 정렬 되어 있다. 입에는 불을 뿜으면서...

 

 

대웅전 앞마당에있는 커다란 북은 오래되어 보이진 않는데 용문양의 그림은 거의 다 벗겨지고 보이질 않는다.

 

 

오어사에서 또 하나의 건물, 대웅전 앞마당에서 한쪽 귀퉁이에 숨겨진 건물이 하나 있다. 절간안에 작은 유물전시관이다

오어사 동종이라는 문화재가 보관된 건물인데, 자세히 둘러보지 않으면 빠뜨리고 못 볼 수도 있다.

1216년에 제작된 고려시대 동종(복원품이 아닌 국보급문화제 실물)이 보관되어 있는데...

이게 800년전 고려시대에 만든 동종의 제일 윗부분 용두장식(범종을 걸어놓기 위한 장치)이 특이 하다.

저수지 준설공사중 발견되어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보전처리후 다시 오어사에 보관되었다고 한다.

 

 

대웅전을 뒤에 보이는 산을 500여미터 가파르게 오르다 보면... 숨이 턱까지 차오를 즈음 자장암이라는 작은 암자가 보인다.

 

원래 자장암자리에 최근 조성된 것으로 단청의 색이 비교적 뚜렷하다.

이 암자의 현판 좌우에는 황룡과 청룡이 한마리씩 여의주를 물고 자리잡고 있다.

특이한건 쌍용의 양옆으로 코끼리가 한마리씩 조각되어 있다.

(어머니 마야 부인이 인도에서 신성시되는 흰 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임신했다 마야 부인은 당시 인도 풍습에 따라 출산을 위해 친정으로 향했는데, 도중에 룸비니 동산에서 탐스러운 무우수 나무를 향해 손을 뻗다가 산기를 느끼고 그곳에서 산실을 차렸다. 석가모니는 마야 부인의 옆구리로 나와, 육방, 혹은 팔방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쳤다 한다)

 

 

그리고 암자의 열려진 문을 닫아보면.....하단부에는 조각에 색이 입혀진 귀면이 보인다.

이 귀면을 근거로 이 암자도 1700년대 영조이후 중건된 암자임을 추정 해 본다.

 

원효, 혜공, 자장, 의상 대사 설명 ?

 

★ 원효는 경산에서 태어났고, 성은 설(薛)씨 태종무렬왕의 둘째딸 요석 공주와 결혼하여 설총을 낳았다. 통도사 창건주 자장율사에게서 배우고, 의상과 더불어 당대 신라의 큰 스님이었다. 양산 천성산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 혜공 스님은 천진공의 집에서 품팔이하던 노파의 아들로 어릴 때 이름은 우조였다.

어느 해 여름. 천진공이 심한 종기를 앓다가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니 문병하는 사람이 집앞을 메웠다. 그때 우조의 나이는 7세였는데 천진공의 종기를 낳게 했다.

신령스러운 자취를 많이 남긴 혜공 스님은 공중에 떠서 열반했는데 사리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출현했다.

★ 자장율사의 아버지 김무림(金茂林)은 진골(眞骨)로서 신라 17관등 중 제3위에 해당하는 소판(蘇判)의 높은 관직에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늦게까지 자식이 없었다. 이에 그는 불교에 귀의하여 “만일 아들을 낳으면 시주하여 법해(法海)의 진량(津梁)이 되게 하겠습니다.”라고 축원하면서 천수관음(千手觀音)을 조성하여 자식 낳기를 빌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아내가 문득 별이 떨어져 품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임신을 하여 아들을 낳으니, 이름을 선종랑(善宗郞)이라 하였다. 그가 태어난 날이 석가모니가 탄생한 4월 8일이란 것만 알 뿐, 정확한 출생 연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자장은 만년에 서울 경주를 떠나 강릉에 수다사(水多寺)를 세우고 거기에 거처하기도 하고, 오대산에 월정사(月精寺)를 세우기도 하였다.

 

자장율사의 전설을 지닌 淨岩寺(정암사)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태백산(太白山)에 있는 절로서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의 하나로서 갈래사(葛來寺)라고도 한다. 신라의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한 사찰이다.

자장율사는 말년에 강릉 수다사(水多寺)에 머물렀는데, 하루는 꿈에 이상한 스님 한 분이 나타나 「내일 대송정(大松汀)에서 보리라.」라고 하고 사라졌다.

그래서 이상하게 생각하고 아침에 대송정에 가보았더니, 문수보살(文殊菩薩)이 나타나서 「태백산 갈반지(葛磻地)에서 만나자.」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자장율사는 즉시 태백산으로 들어가 갈반지를 찾다가, 어느 날 큰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보고 제자에게 「이곳이 아마도 <갈반지>일 것이다.?라 하시고, 석남원(石南院)을 지었는데, 이 절이 정암사이다.

 

이 절에는 자장율사와 문수보살 사이에 있었던 유명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자장이 이곳에서 문수보살이 오기를 기다리던 어느 날, 떨어진 옷을 입은 늙은 거사가 칡 삼태기에 죽은 강아지를 담아 와서 자장을 만나러 왔다고 하였다.

 

시자(侍者)가 스승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을 나무라자 거사는 스승에게 아뢰기만 하라고 말하였다.

시자가 자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으나 미처 깨닫지 못하고 미친 사람으로 생각하여 만나지 않겠다고 하였다.

거사는 「아상(我相)을 가진 자가 어찌 나를 알아보겠는가.」하고 삼태기를 쏟자 죽은 강아지가 사자보좌(獅子寶座)로 바뀌었으며, 그 보좌에 올라 앉아 빛을 발하면서 떠나 가 버렸다고 한다.

그때야 이 말을 들은 자장이 황급히 쫓아가 고개에 올랐으나 헐벗은 거사는 벌써 멀리 사라져 도저히 따를 수 없었다.

자장은 그만 그 자리에 쓰러진 채 죽었는데, 제자들은 뼈를 석혈(石穴)에 안치했다고 전한다.

 

이 절의 수마노탑(水瑪瑙塔)은 유명한데, 이 탑은 자장율사가 643년(선덕여왕 12)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서해 용왕이 자장율사의 신심에 감화되어 마노석(瑪瑙石)을 배에 싣고 동해 울진포를 지나 신력으로 갈래산에 비장해 두었다가, 자장율사가 이 절을 창건할 때 이 돌로써 탑을 건조하게 했다고 하여 마노탑이라 하였다 한다.

 

또한, 물길을 따라 이 돌이 반입되었다고 해서 수 자를 앞에 붙여 수마노탑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탑을 세운 목적은 전란이 없고 날씨가 고르며, 나라가 복되고 백성이 편안하게 살기를 염원하는 데 있다고 한다.

그밖에 또 이 절에는 금탑과 은탑의 전설이 있다.

 

그 밖에도 적멸보궁 입구의 석단에는 선장단(禪杖壇)이라는 고목이 있다.

이 나무는 자장율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심은 뒤 수백 년 동안 자랐으나 지금은 고목으로 남아 있다.

신기한 점은 고목이 옛날 그대로 손상된 곳이 없다는 것인데, 다시 이 나무에 잎이 피면 자장율사가 재생한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지금은 스님들이 남방에 가서 석가모니 진신사리(기원전 485년 숨을 거둔 석가모니의 유체를 7일간 화장했는데, 재가 되지 않은 8만4000여개의 사리가 남겨졌다)를 구해 와서 많은 곳에 적멸보궁이라는 사찰이 생겨났지만 옛날부터 우리나라에 있었던 적멸보궁은 5곳뿐이었다 그 다서 곳을 열거하면

한국의 오대적멸보궁은

① 경상남도 양산 통도사(通度寺)의 적멸보궁,

② 강원도 평창의 오대산 중대(中臺) 상원사(上院寺)의 적멸보궁,

③ 강원도 인제의 설악산 봉정암(鳳頂庵)의 적멸보궁,

④ 강원도 영월 사자산 법흥사(法興寺)의 적멸보궁,

⑤ 강원도 정선의 태백산 정암사(淨巖寺)의 적멸보궁을 말한다.

 

★ 신라 625년(진평왕 47)에 태어나 702년(성덕왕 1)에 입적하였다. 성은 김씨이며, 김한신(金韓信)의 아들로서 계림부(鷄林府) 사람이다.

 

의상대사는 19세 때 황복사에서 출가하였으며, 출가한 지 얼마 안 되어 원효(元曉)와 함께 중국으로 가던 중 요동(遼東)에서 고구려 군에게 붙잡혀 정탐자로 오인받고 수십 일 동안 잡혀 있다가 돌아왔다.

 

 

'여행-경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주 비로사  (0) 2021.10.15
포항 호미곶  (0) 2021.10.15
포항 구룡포문화의 거리  (0) 2021.10.14
포항 구룡포공원  (0) 2021.10.14
청송 주왕산. 대전사  (0) 2021.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