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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경남

남해 금산과 보리암

by phd100 2013. 12. 11.

 

금산(錦山)

   남해도에는 화방사를 품고 있는 망운산(望雲山, 759m)과 용문사가 있는 송등산(松登山,617m), 보리암이 있는 금산(錦山, 701m)이 있는데 이 가운데 금산만한 산이 없어 이 금산을 소금강(小金剛)이라 부르기도 한다. 경치가 얼마나 빼어난지 바다를 내려보는 금산을 예로부터 모두 38경으로 나누어 시인 묵객(墨客)들이 저마다 이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지만 와서 한 번 보는 것 만 큼은 못할 것 같다.

    일출이 장관인 망대, 전망이 가장 좋은 보리암, 태조 이성계가 백일 기도 하던 기단, 음성굴과 쌍홍문 등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절경이 산재해 있다.

    금산(錦山)의 본래 이름은 보광산(普光山, 신라 문무왕 3년(633) 원효대사에 의해 보광사가 창건 되면서 불리어진 산)이었다고 한다. 보광산이 금산으로 바뀐 연유는 태조 이성계가 조선의 개국을 앞두고 보광산에서 백일간 관음기도를 올리며 뜻대로 개국만 된다면 이 산을 온통 비단으로 덮어 보답하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조선이 자신의 뜻대로 개국이 되자 이성계는 그 보답으로 비단으로 이 산을 덮진 못하지만, 이름으로라도 은덕을 보답하기 위해 금산(錦山, 普光대신에 비단금 錦을 씀)이라 하였으니 이성계의 호방한 성격과 보은(報恩)의 마음이 어우러진 이야기다.

 

  금산의 제1경인 쌍홍문을 비롯, 무려 38경이 해발 671m의 조그만 산에 자리하고 있으니 얼마나 아기자기하고 산이 수려한지를 상상하고도 남는다.

    거대한 바위들이 서로 엉켜있는 사이사이에는 낙락장송과 산죽들이 늘 푸르고, 산 아래로 보이는 반달모양의 하얀 모래가 흰눈썹처럼 보이는 상주해수욕장에서부터 시작되는 한려수도가 바로 눈앞에 광활하게 전개된다.

   지금은 남해읍에서 11km쯤인 신전리에서 보리암 안내판을 보고 좌회전하면 복곡저수지를 지나 보리암 주차장까지 가서, 다시 셔틀버스로 갈아타거나 승용차로 산중턱까지 올라갈 수 있다. 올라가는 길 양쪽옆에는 편백나무 숲이 산 정상까지 뻗어 기암괴석만이 있는 금산을 또 다른 맛을 보게 한다. 휴일에는 북적거리는 관광객 때문에 수도하고 기도하는 성지로서의 맛을 잃은 지 오래다. 최근에 생긴 관음보살상이 있는 곳에 이르면 보리암 전체를 바라볼 수 있고, 한려수도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땀을 식힐 수 있다.

 

  금산의 정상은 산 위 주차장에서 약 1km를 더가면 좌측 보리암 가는 길, 우측 정상가는 길로 갈라지는 곳에서 800m, 10분 정도 산죽 숲사이를 오르면 된다.

   정상에는 망대(望臺)가 있어 일망지하(一望之下)로 금산 38경과 남해의 만경창파(萬頃蒼波)와 천인(天人)의 조화라고 할 수 있는 일출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곳에는 고려 시대부터 사용되어 온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최남단의 봉수대(烽燧臺: 남해안으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기 위한 군사통신 시설의 하나로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하던 곳이다. 고려 명종 때 축조된 것이라 전하며 당시 전국 봉수 경로의 다섯 개의 거선(炬線)중 제2 거선인 동래(東來)에 속하는 우리나라 최남단에 자리 잡은 촉각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중요한 출발지이다

   동쪽으로는 창선면 대방산(臺方山) 봉수대를 거쳐 진주로 연결 되었으며, 서쪽으로는 남면 소흘산(所屹山) 봉수대를 거쳐 제5 거선인 순천 돌산도로 연결 되어 있고, 북쪽으로는 이동면 원산(猿山) 봉수대로 연결하는 간봉(間峰)으로서 오늘 날까지 비교적 원상으로 보존되어 있다. 높이 4.5m, 둘레 26m인 방대형(方臺型)으로 당시 봉수대는 오장(伍將) 2명과 봉졸(烽卒) 10여명이 교대로 근무 했다.) 가 그대로 남아 있다. 사방조망이 비길 대 없이 아름다운 망대라 할 수 있다.

 

 

보리암(菩提庵)

 경남 남해군 상주면(尙州面) 상주리 금산 남쪽 봉우리에 있는 절.

  683년(신문왕 3) 원효가 이곳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 산 이름을 보광산, 초당의 이름을 보광사라 지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조선왕조를 연 것에 감사하는 뜻에서 1660년(현종 1) 왕이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 산 이름을 금산, 절 이름을 보리암이라고 바꾸었다.

전국의 3대 기도처의 하나이며 양양 낙산사 홍련암, 강화군 보문사와 함께 한국 3대 관세음보살 성지로 꼽힌다.

   현존하는 건물로 보광전, 간성각, 산신각, 범종각, 요사채 등이 있고, 문화재로는 보리암전 삼층석탑이 있다. 이외에 보광전에는 큰 대나무 조각을 배경으로 좌정하고 있는 향나무 관세음보살상이 있으며 그 왼쪽에는 남순동자, 오른쪽에는 해상용왕이 있다. 일설에 따르면 이 관세음보살상은 수로왕의 부인 허황옥이 인도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보리암에서 가장 특이한 현상이 하나 있다. 해수관음보살상 앞에 있는 삼층석탑이 바로 그것이다. 김수로왕비 허태후가 인도 월지국에서 가져온 불사리(佛舍利)를 원효대사가 봉안한 탑(그러나 화강암으로 건조한 고려 초기의 양식으로 보이고 있어 단층 기단위에 형성한 높이 165cm의 우아한 탑신에는 각층마다 우주(隅柱)가 새겨져 있고, 상부에는 구한 구슬모양의 보주(寶柱)가 남아 있다.)인데, 

 

  이곳에 나침반을 두면 자침이 남북을 가리키지 못하고 헛돌기만 하는 신비한 곳이다. 이곳이 명당중의 명당이라고 하는 이도 있지만, 조선시대 승 백월당은 이곳이 명당이 아니라서 보광사를 송등산으로 옮겨 용문사라고 했으니 명당의 기준은 무엇인지 범인은 모르겠다.

 

금산과 보리암(3-1)

 

금산과 보리암(3-2)

 

 금산과 보리암(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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