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제2부
전남 순천시 송광면(松光面) 조계산(曹溪山) 서쪽에 있는 사찰로서 한국의 삼보(三寶)사찰 [불보는 석가모니 통도사(通度寺), 법보는 경전과 교법해인사(海印寺), 승보는 제자 집단송광사(松廣寺)] 가운데 승보(僧寶)사찰로서 유서 깊은 절이다.
조계종은 신라 때부터 내려오던 구산선문(九山禪門)의 총칭으로, 고려 숙종(肅宗) 2년(1097)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이 일으킨 천태종(天台宗)과 구별해 이렇게 부르기도 하였다.
조계종의 발상지로서 현재는 선수행(禪修行)의 도량이며, 조계총림(曹溪叢林)이 있는 곳이다.
송광(松廣)이라는 이름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
첫째는 18명의 큰스님들이 나셔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펼 절이라는 것이다. '송(松)'은 곧 '十八(木)+公'을 가리키는 글자로 18명의 큰스님을 뜻하고, '광(廣)'은 불법을 널리 펴는 것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둘째로 보조 국사 지눌과 연관된 전설이다. 곧 지눌이 터를 잡을 때 모후산에서 나무로 깎은 솔개를 날렸더니 지금의 국사전 뒷등에 떨어져 앉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뒷등의 이름을 치락대(鴟落臺:솔개가 내려앉은 대)라 불렀다 한다. 이 전설을 토대로 육당 최남선은 송광의 뜻을 솔갱이(솔개의 사투리)라 하여 송광사를 솔갱이 절이라 풀었다고 한다.
송광사(松廣寺)의 삼무(三無)
주련(柱聯)이 없고, 석탑(石塔)이 없고, 그리고 풍경(風磬)이 없다.
일설에는 탑이 없는 이유는, 조계산에서 내려다본 송광사의 지형이 물위에 떠 있는 연꽃모양이기 때문입니다. 연꽃위에 무거운 석물을 올리게 되면 연꽃은 쉬 가라앉게 된다고 해서 석등이나 석탑이 없다.
처마 끝에 풍경(風磬) 없는 것 또한 조금이라도 수행에 방해될까봐서 승보 종찰의 일면이다.
대웅전 (大雄殿)
대웅전은 절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대웅전·의창군서’라고 쓰인 현판도 있는데, 의창군은 선조의 8번째 아들이며 광해군의 동생이다. 인조 14년(1636)에 세운 송광사개창비의 글도 의창군이 썼다. 석가여래(釋迦如來)를 본존불(本尊佛)로, 좌우(左右)에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와 약사여래(藥師如來)가 안치(安置)되어 있다.
송광사의 3가지 명물
1) 비사리구시 : 비사리구는 우선 크기가 보는 이를 압도한다. 1742년 남원 세전골에 있었던 큰 싸리나무가 쓰러지자 이것을 가공하여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송광사 대중의 밥을 담아 두었던 것으로 쌀 7가마분(4천명분)의 밥을 담을수 있다고 한다.
2) 능견난사(能見難思) : 송광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29점의 바리때(공양 그릇)로, 송광사 제6대 국사인 원감국사 충지(沖止 1226~1292년)가 원나라에 다녀오면서 가져왔다고 전해진다.
제작기법이 특이하여 어느 순서로 포개어도 크기가 오묘하게 딱 들어맞는다고 한다. 조선시대 숙종이 장인(匠人)에게 그와 똑같이 만들어보도록 명하였으나 결국 실패하자 ‘보고도 못 만든다’는 의미로 왕이 친히 ‘능견난사(能見難思)’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전해진다.
3) 천자암 쌍향수(곱향나무)(天子庵雙香樹) : 곱향나무로 불리는 송광사의 명물 쌍향수는 조계산 마루 천자암 뒤뜰에 있다. 두 그루 향나무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쌍향수란 이름이 붙었는데, 나무 전체가 엿가락처럼 꼬였고, 가지가 모두 땅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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