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시 오천읍 항사리 운제산에 자리잡고 있는데 정확한 연대는 모르나 신라 진평왕 때 세워졌다고 전해온다.
처음의 이름은 항사사(恒沙寺). ‘항사’란 말을 글자 그대로 풀면 ‘갠지스 강의 모래알’이라는 뜻이 되지만 불전에서는 흔히 그 모래알처럼 무한한 수를 가리키는 비유로 쓰인다.
일연스님은 『삼국유사』에서 “전하는 말에 항하수의 모래알처럼 많은 사람들이 세속을 벗어났으므로 항사동(恒沙洞)이라 부른다”고 절 이름에 담긴 뜻을 각주로 풀이했다.
이곳은 신라의 4대 스님, 원효, 혜공, 의상, 자장이 머무른 곳이다. 네 분 조사가 도를 즐기고 현담(玄談)을 나누던 때에 혜공과 자장 스님은 북쪽 산꼭대기에 머물고, 원효와 의상 스님은 남쪽의 바위 벼랑 위에 살았다.
남쪽의 바위 벼랑과 북쪽의 산꼭대기는 마치 능가산(楞伽山)에 오르기 힘든 만큼 오가기 어려웠다.
이에 구름(雲)을 사다리(梯) 삼아 절벽에 걸쳐놓고 왕래했으니 묘법(妙法)과 신술(神術)을 체득하지 않았다면 능히 이럴 수 있겠는가.
항사사가 오어사로 이름이 바뀐 경위는 물론 혜공스님의 일화에서 유래하지만 ‘판본’에 따라 그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사적」에 소개된 것 말고 또 다른 판본 하나는, 원효와 혜공 스님이 각각 물고기 한마리씩을 잡아먹고 똥으로 배설된 물고기를 되살리는 시합을 벌였다.
불행히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살지 못하고 다른 한 마리만 살아서 힘차게 헤엄쳐갔다. 이를 본 두 사람은 서로 자기가 살린 고기라고 우기며 “내(吾) 고기(魚)”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일화의 정본(定本)은 『삼국유사』이다. 어느 날 원효와 혜공 두 스님이 개울가에서 물고기를 잡아먹은 뒤 바위 위에 똥을 누었다. 혜공이 그것을 가리키며 “그대의 똥은 내(나 吾) 고기(고기 魚)일게요” 하고 놀려댔다. 이 일로 말미암아 오어사라 부르게 되었다는 내용이 앞의 책 권4 「이혜동진」(二惠同塵)에 실려 있다.
다시 말해 오어사에 얽힌 혜공스님의 일화는 『삼국유사』에 바탕을 두고 조금씩 살을 붙이고 각색하여 몇 가지로 갈래를 친 것이다.
(지금도 오어사에는 원효 스님의 삿갓이 보관되어 있다. 요즘 여름철에 볼 수 있는 섬세한 발보다 10배나 더 정교한 풀뿌리로 짜여진 이 삿갓의 높이는 1척이고 밑의 직경은 1.5척이다. 뒷부분은 거의 삭아 버렸는데 겹겹이 붙인 한지에 붓글씨가 쓰여져 천 년 세월을 되돌아 보게 한다.)
단 한 채, 대웅전을 제외하곤 모든 건물이 불과 몇 십 년 사이에 새로 지어진 것들이라 사적기를 쓸 무렵의 옛모습은 상상 속에 접어두는 수밖에 없다.
조선 영조 17년(1741)에 중건한 대웅전도 감흥을 자아낼 만큼 대단치는 않다. 단지 연꽃봉오리로 끝을 마감한 내부의 공포가 불꽃처럼 화려하고 국화와 모란을 새김질한 정면의 꽃창살이 조촐하게 두드러질 따름이다.
정면 가운데 칸, 곧 어간에 달린 세 짝 문은 구조가 특이하다. 오른쪽 문짝은 밖여닫이, 가운데 문짝은 안여닫이, 왼쪽 문짝은 붙박이이다.
대충 이런 정도이지만 대웅전 기단 위를 좌우로 거닐며 잡목 가득한 호수 건너편 앞산과 추녀끝에 아아하게 걸린 바위 벼랑을 쳐다보노라면 한 줄기 맑은 바람이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오어사에는 원효암과 자장암. 두 암자가 있다>
암자들이라고 예전의 모습을 지키고 있을 리 없다. 혜공 · 의상 · 은적 세 암자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자장 ·원효 두 암자가 명맥을 잇고 있으나 그도 허울 좋은 암자다. 허드재비를 개비하듯 터와 이름만을 빼고는 깨끗이 새 단장을 했으니 말이다. 때문에 자장암은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만족하는 게 오히려 좋다.
절 뒤편 높고 험한 벼랑 꼭대기에 제비집처럼 오똑 올라앉아 바위와 어울리는 모습이 영락없이 관념산수화 속의 풍광이라 아래서 바라보는 맛은 그만이지만 막상 숨을 몰아쉬며 암자까지 올라가봐야 새 집, 생경한 단청말고는 볼거리가 없으니 말이다.
세 채의 건물이 멋없게 줄지어 선 원효암도 이름만 남기는 매한가지. 그래도 원효암 가는 길은 잠시 마음을 쉴 수 있는 조촐한 길이다. 특히나 잡목 숲이 잎을 모두 떨구어 수근거리는 소리조차 끊어진 때 이 길을 오르면 만상 속에 홀로 선 느낌에 소슬해진다.
오어사에서 건너다보이는 바위 벼랑은 수직으로 100여 미터에 이른다. 여기에 꽃철이면 진달래가 바위틈을 메우며 서리서리 피어오른다. 진달래와 바위, 이들이 어떻게 어울리는지를 보고 싶거든 꽃소식을 기다려 오어사를 찾으라.
<대웅전>
오어사(吾魚寺)에서는 300년 전의 용(龍)을 만날 수 있다. 단청색 바랜 오래된 건물이 대웅전이다. 최초 신라 진평왕 때 창건되고 영조대왕 때 중건 되었으니 300년 된 건물이다.
화려한 단청이 입혀진 처마장식에는 모서리 높이 보이는 용두가 입에 허연 뭔가를 물고 있다. 물고기인가?
대웅전 처마는 좀 특이하다. 모서리처마 이외의 대웅전 현판이 걸려 있는 정면에도 용두로 장식되고 용두위에 봉황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이 용두가 전면에 주욱 정렬되어 있다. 입에는 불을 뿜으면서...
대웅전 앞마당에 있는 커다란 북은 오래되어 보이진 않는데 용문양의 그림은 거의 다 벗겨지고 보이질 않는다. 북이 놓여진 자리가 세월을 말해 주는 것 같다.
오어사에서 또 하나의 건물, 대웅전 앞마당에서 한쪽 귀퉁이에 숨겨진 건물이 하나 있다. 절간안에 작은 유물전시관이다
오어사 동종이라는 문화재가 보관된 건물인데, 자세히 둘러보지 않으면 빠뜨리고 못 볼 수도 있다.
1216년에 제작된 고려시대 동종(복원품이 아닌 국보급문화제 실물)이 보관되어 있는데, 이게 800년 전 고려시대에 만든 동종의 제일 윗부분 용두장식(범종을 걸어놓기 위한 장치)이 특이 하다.
앞 저수지 준설공사 중 발견되어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보전처리 후 다시 오어사에 보관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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