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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전남

장성 백양사(白羊寺)

by phd100 2017. 4. 3.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백암산(白巖山)에 있는 절로서 632년(무왕 33) 여환(如幻)이 창건하여 백양사라고 하였으며, 1034년(덕종 3) 중연(中延)이 중창하면서 정토사(淨土寺)라 개칭하였고, 1350년(충정왕 2) 각진국사(覺眞國師)가 3창하였다.

15세기에 백암사(白巖寺)로 바뀌었다가 16∼19세기 중반에 다시 정토사로 고쳤다.

다시 백양사로 개액(改額)한 것은 1574년(선조 7) 환양(喚羊)이 중건하면서 부터이다.

환양이 백양사에 주석하면서 매일 『법화경』을 독송하니 백양이 경을 읽는 소리를 듣고 몰려오는 일이 많아 절 이름을 백양사라 개칭하고 승려의 법명도 환양이라 하였다.

 

그 뒤 1786년(정조 10) 환성(喚惺)이 중건하였고 1864년(고종1) 도암(道巖)이 중건하였으며, 1917년 송만암(宋曼庵)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만암은 45세 때부터 백양사 주지직을 맡아 30년 가까이 주석하면서 불사(佛事)에 진력하는 한편, 강원(講院)을 개설하고 중앙불교전문학교장을 겸임하면서 많은 인재를 길러냈다.

 

백양사는 일제강점기 31본산 중 하나 였으며, 현재 부속 말사 26개소를 관장하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大雄殿)을 비롯하여 극락보전(極樂寶殿) · 명부전(冥府殿) · 칠성각(七星閣) · 진영각(眞影閣) · 천왕문(天王門) · 선실(禪室) · 요사채와 범종 · 법고 · 목어 · 운판 등의 사물(四物)을 소장하고 있는 범종각(梵鐘閣)이 있다.

 

이 가운데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3호인 백양사 대웅전은 1917년 송만암이 백양사를 중건할 때 건립한 것으로 내부에는 석가여래삼존불과 1979년 보각행(普覺行)이 조성하여 새로 모신 10척 높이의 불상, 그 왼편에 용두관음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또한 대웅전 내 오른쪽으로 바늘귀를 꿰는 모습, 등을 긁는 모습 등 해학적인 모습을 한 나한상 23체가 봉안되어 있다.

 

전남 유형문화재 제32호인 백양사 극락보전은 400여 년 전에 지은 것으로서 백양사 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영 · 정조 대에 지은 건물인데, 건평 50㎡에 세워진 정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1973년 단청하였으며 1976년 보수하였다. 명부전은 1896년에 건립된 것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이며, 각 주두(柱頭)마다 공포가 장식되어 있다.

 

전내에는 흙으로 조성한 시왕(十王)과 목조 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이 봉안되어 있다.

전남 유형문화재 제44호인 백양사 사천왕문(四天王門)은 백양사의 정문으로 1917년 건립되었으며, 현재 문의 오른쪽에는 지국천왕(持國天王)과 증장천왕(增長天王), 왼쪽에는 광목천왕(廣目天王)과 다문천왕(多聞天王)이 봉안되어 있다.

 

이 밖에도 대웅전 뒤편의 팔정도(八正道)를 상징한 팔층탑(八層塔)에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眞身舍利) 3과가 안치되어 있으며, 부도전에는 백양사에서 배출, 주석하였던 휴정(休靜) · 유정(惟政) · 모운(慕雲) · 태능(太能) · 범해(梵海) 등 18승려의 사리와 유골을 모신 석종(石鐘) 모양의 탑과 비(碑)가 있다.

 

이 중 소요대사 부도(逍遙大師浮屠)는 백양사 재흥에 힘쓴 태능의 유업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한 탑으로, 그 둘레에는 용이 구름을 감고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조각이 되어 있고, 좌대에는 연잎들이 조각되어 있다.

 

이 부도는 석종형으로서 상대(上帶) · 유곽(乳廓) · 하대(下帶) 등에 양각으로 섬세하게 조각되었으며, 기단은 복련(覆蓮)으로 덮은 위에 2단의 몰딩을 두어 종신(鐘身)을 올려놓은 모습이다. 이 백양사 소요대사 부도는 2002년 9월에 보물 제1346호로 지정되었다.

 

백양사의 산내암자로는 약사암(藥師庵)과 영천굴(靈泉窟), 1351년에 창건한 청류암(淸流庵), 1981년에 지은 수도도량 물외암(物外庵), 천진암(天眞庵) 등이 있다.

그러나 고려시대부터 있어 온 운문암(雲門庵) 등 많은 암자들이 6·25전쟁 때 불타버렸다.

 

이 중 운문암은 6·25전쟁 전까지만 해도 백양사 8개 암자 중 대표암자였으며, 백양사 뒤 계곡을 끼고 3.5㎞ 위에 있다.

 

고려 때 각진이 창건했다는 운문암은 백양사 수도도량 중 전망이 가장 좋은 곳에 있으며, 조선시대의 신승 진묵(震默)의 일화가 전해 오고 있다.

진묵이 임진왜란 직전 이 암자에서 차를 달이는 소임을 맡고 있었는데, 어느 날 전체 대중이 차를 달이는 운문암 중 진묵을 조사(祖師)로 모시라는 현몽을 한 뒤 진묵을 조실(祖室)로 앉혔다.

 

어느날 진묵은 “내가 올 때까지는 이 불상을 도금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자취를 감추었으므로 지금도 그 불상은 거뭇한 그늘색을 띤 채 진묵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또 백양사 오른쪽 계곡 상부에 있는 국제기(國祭基)는 천신께 제사를 올리던 곳으로서 호남일대에 재난이 있을 때에는 나라의 명을 받아 이곳에서 천제(天祭)를 올렸다.

 

조선시대 영조 때 호남지방에 대유행병(大流行病)이 나돌아 호남 감사가 영조에게 상소를 올리자 영지를 택하여 크게 기도를 드리라고 하였으므로, 이곳 바위에다 ‘國祭基’를 음각(陰刻)하여 새기고 제사를 지내게 된 것이 그 유래이다.

 

또 영천굴은 20평 남짓한 천연석굴로 단칸의 영천암이 있는 곳이다. 굴속의 바위틈에서 샘이 솟아나오는데 이를 영천이라 한다.

 

장마 때나 가뭄 때나 항상 일정한 물이 흐르는 이 샘에는 옛날 한 사람이 먹을 만큼의 쌀이 나왔는데, 하루는 어떤 손님이 와서 더 많이 나오라고 작대기로 쑤셨더니 그 뒤로는 쌀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또 백양십이경의 하나인 일광정(日光亭)에서는 해마다 사월초파일에 불가(佛家)의 시련법식(侍輦法食)이 거행되며, 백양사 뒤의 학바위는 고려 때부터 조선 중종 때까지 천제를 지낸 곳이라 한다. 절 일대의 비자나무는 천연기념물 제153호로 지정되어 있고 약 3만 그루가 밀집하고 있어 춘백양(春白羊) 추내장(秋內藏)이란 칭호를 얻고 있다.

 

이 밖에도 백암산의 학봉 · 상왕봉 · 사자봉 · 가인봉 등의 절경과 설경 등이 어울려 백양사일대는 예로부터 조선팔경의 하나로 유명했던 곳이기도 하다.

 

◇ 백양사의 전설

백양사는 632년 (백제 무왕 33년) 여환선사가 창건하고 백암사라 칭하고 있다. 절 뒤에는 학바위(백학암)라는 바위가 있는데 모습이 학같이 생겼다 하여 부르는 것이다.

백암산이라는 산이름도 이 학바위로 인해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운문암은 옛날부터 높은 도승들이 수도를 하던 암자였다. 그런데 정토사라는 이 절의 이름을 백양사로 고친 것은 다음과 같은 유래가 있다.

 

「스님은 어디서 오셨소?」

「소승은 금강산 장안사에서 왔습니다.」

「소승은 공주 마곡사에서 왔습니다.」

「소승은 묘향산에서 왔소이다.」

 

전국 각처에서 수많은 스님들이 매일 구름처럼 장성 정토사로 모여들었다. 스님들뿐만 아니라 원근 각 지방의 백성들은 쌀과 찬을 꾸려들고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니 난데없이 무슨 일이 났기에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든담.」

「글세 말이오. 아무튼 삼사일 전부터 팔도 강산의 중이란 중은 다 모이는 것 같소이다. 절에서 스님들이 무슨 대회라도 연단 말인가...」

「당신들은 모르는 소리요. 지금 백암산 정토사에는 지완스님이 와 계시오. 지완스님은 상감님께까지 설법을 내리신 도가 높으신 스님이시오.

이번에 그 지완스님께서 법회를 베푸시게 되었고 그래서 그 높으신 지완스님의 법회에 참석코자 팔도강산의 고승들이 모두 모이고 불도를 믿는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들고 있는 것이오. 나도 내 한 평생에서 다시없을 이번 법회에 꼭 참가를 하려하오.」

 

이러한 소문은 더욱 퍼져서 전라도는 물론이요 충청도, 경상도, 서울 등지에서 법회에 참가하려는 사람들이 수 없이 몰려왔다.

마침내 법회의 날이 되었다. 이른 새벽부터 법종이 은은하게 울리는 가운데 수만 명이 운집했다. 붉은 법복을 입은 지완스님이 불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나무관세음보살....」

지완스님은 오늘의 법회가 부처님의 보살핌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자비가 미치기를 진심으로 기원했다. 경건한 기도가 끝나고 지완스님이 인도하는 법회가 드디어 시작됐다.

 

그런데 난데없는 수천 마리의 백학이 날아와서 절의 주위를 감쌌다.

「아- 저 백학들도 지완스님의 높은 덕을 찬양하고 오늘의 영광스런 법회에 참석하러 왔구나.」

 

법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이같이 말하고 새삼스러이 지완스님의 덕에 깊이 감복 했다.

모든 참석자들은 지완스님의 설법에 감동되어 황홀한 선경에 오른 듯 석가여래의 재림을 대한 듯 깊은 깨달음 속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법당위에 오색이 찬란한 서기가 내리며 하늘에서 은은한 독경 소리가 들려왔다. 오색 찬란한 서기를 본 참가자들은 그 신비스런 사실에 모두 눈을 크게 뜨고 하늘을 올려 다 보았다.

그런데 이 어이된 일인가? 흰 구름을 타고 한 마리의 흰 양이 사뿐히 내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양이 절에 가까워지자, 하늘에서 들려오던 독경소리는 더욱 크게 들려왔다.

 

「아 - 하늘에서 내려오는 양이다.」 「아니, 저 양은 부처님께서 내려 보내신 불제자이다.」

 

이같이 모든 사람들이 수근거렸으나 지완스님은 조용하고 담담하게 설법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자 하늘에서 내려온 양은 지완스님 앞에 이르러 무릎을 꿇었다. 그런데 양의 털은 어찌나 희고 번쩍이는지 눈이 부시었으며 찬란한 광채가 발했다.

양은 지완스님에게

「스님의 높으신 법회에 참석코자 내려왔나이다.」하고 말했다.

 

지완스님은 부처님의 높으신 배려라고 생각하고「나무관세음보살...」을 연거푸 부르며 감사를 올렸다.

그런데 밤이 되자 양의 몸에서 밝은 광택이 비치어 절 안팎을 낮과 같이 밝혀 주었다.

그래서 횃불을 피우지 않아도 되었으며 법회는 더욱 선경에 이르렀다. 지완스님의 법회는 칠일 동안 계속됐다.

칠일이 끝나는 날이 되자 흰 양은 다시 흰 구름 속에 쌓여 은은한 독경소리를 남기며 하늘로 올라갔다.

 

지완스님의 법회에 하늘에서 백양이 내려왔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졌다. 이에 모든 사람들은 지완스님의 높은 덕을 더욱 숭상하게 되었는데 이 소문이 숙종 임금에게도 전해져서 숙종은「참으로 경사스런 일이로다.

하늘에서 양이 내려왔다니 나라에 좋은 일이 있을 길조로다. 그러니 그 사실을 영구히 기념하기 위해 절 이름을 백양사로 고치도록 하여라」라고 분부하고 많은 시주를 내리었다.

이리하여 이후부터 정토사가 백양사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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