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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얘기

進禮面(5)

by phd100 2017. 11. 6.

 



<進禮, 그 곳에 가고 싶다.>

 

<오늘 부터는 진례면 여러 곳의 마을 찾아 갑니다. 혹시 틀린 부분이 있으면 즉각 알려 주세요.>

 

[청천리(晴川里)]

남해고속도로 진영, 진례톨게이트 근처에 위치하고 있으며, 옛날엔 한 동리였던 다고과 관곡이 고속도로개통으로 분리 되었다.

 

<관곡(冠谷)>

옛날 진례 동쪽을 율리면, 서쪽을 청내면이라 불렸는데 지금의 진례면 청천리라는 말은 일제 때 바뀌었고, 오늘날 청천리 안에 관곡, 다곡, 곤법이 있다.

청천(晴川)은 맑은 내를 말한다. 관곡은 오래전부터 다곡에 속해 있다가 1982년 남해고속도로가 동네를 갈라놓아 다곡에서 관곡으로 법정동으로 분동되었고 조그만 시내를 사이에 두고 진영읍 의전리와 접경하고 있다.

 

<다곡(茶谷)>

옛날 가락국 때 텃골에 태씨가 터를 잡아 살다가 큰불로 동리가 불에 타서 태씨(太氏)는 텃골을 떠나고,

임진왜란 때 김해 사충신의 한 분인 류식공의 아드님인 수홍공이 대동에서 이곳으로 옮겨와 살고부터 다곡은 류씨의 집성촌으로 사백여 년을 이어온다.

 

상곤법(上昆法)

곤법이라는 마을 이름 전에 화법(花法)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마을의 형상이 마치 꽃봉오리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곤법의 명칭은 인륜과 예의 법도를 으뜸으로 숭상한다 하여 곤법이라고 부서 고법야촌(경상도지리지에서 나옴)에서 개칭된 것 같다.

지형상 윗마을을 상곤법이라 한다. 1951년 상 하곤법으로 나누어졌다.

 

하곤법(下昆法)

마을 명칭을 화법이라 한 것은 산등성이가 꽃의 형상과 같다고 화법이라 명칭 한 것 같으며, 먼저 입촌한 성씨는 파평윤씨, 능성구씨, 경주최씨가 살았다고 전하나 지금은 살고 있지 않으며 광주안씨, 청도김씨, 창녕성씨 순으로 여러 성씨가 있다.

 

새터의 광주안씨 족보에 1592년(임진왜란 때)에 선조가 거주한 것으로 보아 400여 년이나 된다.

 

[시례리(詩禮里)]

진례면사무소에서 진영방향으로 1km정도에 있는 시례교에서 동네 도로를 따라 들어가면 상촌, 하촌, 신기마을이 있다

 

상촌(上村)

마을 뒤 주봉(主峯)인 시루봉 때문에 시루골이 되고 시례골로 바뀐 듯 하다. 목면봉(木綿峯)의 내맥(來脈)이 주용(主龍)으로 비파등(琵琶嶝) 정자등이 청용등(靑龍嶝)이 되고 등대(嶝坮)와 원등(院嶝)이 내외(內外) 백호등(白虎嶝)으로 마을을 좌우로 감싸 유수한적(幽遂閑適)하고 물은 맑고 땅은 비옥한 마을이다.

 

마을이 이룩되기는 약 300년 전 진례면 시례리 상촌마을에 형성된 광주안씨 집성촌은 과거의 모습을 여전히 잘 담고 있는 곳이다.

경남 함안에 살던 조선 인조 때 근제처사 안경지 선생이 부인 광산김씨의 집안사람들이 주로 살고 있었던 시례리로 들어오면서 김해에 뿌리를 내리게 됐다.

광주안씨의 집성촌으로 그간 유행(儒行)과 문한(文翰)이 끊이지 아니하였다. 광주 안씨 사람들은 이 마을에서 11대째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광주안씨 집안이 160년 간 대대로 살아온 도문화재 염수당이 동네 한 가운데 있다. 오래된 집이지만 비교적 깔끔하게 보존돼 있다.

 

1854년 세워져 2006년 경남도문화재 지정 700평 대지에 대문채, 사랑채 등 건물 5채, 두 사랑방 앞에는 ‘예강서원’ 편액 이 걸려 있고, 도자료 279호인 <염수당 고문서>등 귀중한 자료와 명사들과 주고받은 편지, 분재기, 혼서 등이 보관되어 있다. 수년전 까지만 해도 광주안씨 11대손 고 안봉환선생이 실제로 기거 했었다.

특히 무릎보다 낮은 굴뚝엔 ‘남 배려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시례라는 명칭도 시루봉에서 연유 됐다고 하지만, 한자 표기는 예부터 詩와 禮를 중시하는 마을 사람들의 품성에서 연유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하촌(下村)

임진왜란 전에 광산 김씨가 살았다고 전해오며 시례리의 마을 이름은 논어의 *흥어시입어예성어악(興於詩立於禮城於樂: 공자가 이상으로 삼은 문화인의 모습)에서 나온 동명이라고도 하고, 마을 뒤 주봉인 시루봉 때문에 시루골이 되고 시례골로 바뀐 듯하다.

(*詩를 통해 순수한 감정을 불러 일어키고, 禮를 통해 도리에 맞게 살아가는 기준을 세우며, 樂을 통해 인격을 완성한다.)

신기(新基)

노현에서 뻗어 내린 내맥이 마을의 주용으로 마을위에서 좌우로 갈라져 청용등과 백호등이 되어 좌우에서 마을을 아늑하게 감싸고 있고 300여년 전에 입향조(入鄕祖)인 노강 박뢰의 조고인 지산 박령의 후손인 밀양 박씨의 집성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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