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대적사(淸道 大寂寺)
경북 청도군 화양읍 동학산(洞鶴山) 대적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로 통일신라시대인 876년(헌강왕 2)에 보조선사(普照禪師) 체징(體澄:804∼880)이 창건하였으며,
고려시대 보양(寶壤)이 중창하였고 조선시대인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불에 타 1635년(인조 13) 중건한 뒤 1689년(숙종 15) 성해(性海)가 다시 고쳐 지었다.
극락전은 불교에서 서방 극락 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시는 사찰 당우(堂宇)를 말하는데, 대적사의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겹처마 맞배지붕의 다포양식이다.
지붕 양측면에 풍판(風板)이 달려 있고 기둥은 두리기둥으로 건물 내부의 천장은 우물천장이며 불단(佛壇) 위에는 닫집을 설치하였다. 5량가구(五樑架構)로 고주(高柱) 없이 대량(大樑)과 종량(宗樑)을 걸었다.
지금의 극락전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그 뒤에 중건한 것이다.
건물의 기단축부(基壇軸部)의 대석(臺石)에는 다른 건물의 기단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조각기단으로 되어 있는데, 기단 앞면에는 돌기(突起)된 구획을 양각하고 연꽃무늬와 거북무늬를 새겼고 계단 옆면에는 용비어천도(龍飛御天圖)가 새겨져 있어, 당시의 웅대한 대사찰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대적사 극락전(大寂寺 極樂殿)의 반야용선
청도 대적사에 가면 거인이 왕생자를 하늘 높이 들어 올리고 있는 희귀한 벽화가 있다. 그릇에서 다섯 명이 화생하고 있다.
참고로 해남 미황사, 여수 흥국사, 청도 대적사 건물기단은 바다세계를 나타내고 있다. 계단 소맷돌에 용, 연봉, 넝쿨, 거북장엄 암각화와 민화풍의 익살과 천진스러움을 표현하고, 법당 내부에는 인로왕보살, 지장보살 모셔놓았다.
법당 건물기단부를 바다세계로 장엄하게 장식한 반야용선(般若龍船)의 불교미술적 표현은 다양하게 전개해 왔다.
탱화나 벽화를 통한 회화적 방식, 자연의 지형이나 바위를 통해서, 법당의 건축, 혹은 기단 등의 건축장치를 통해서, 천정에 매단 용머리 횃대 양식 등등 소재나 장엄양식만큼이나 다양하다.
우선 탱화로 그린 반야용선도는 영천 은해사 염불왕생첩경도와 서울 안양암 극락왕생도가 대표적이다.
두 탱화 속에 반야용선도는 대단히 수준 높은 필치로 개념적 완성도를 구축하고 있어 주목을 끈다.
이런 반야용선도는 법당 내외벽의 벽화로도 몇 곳에서 현존한다.
양산 통도사 극락보전, 파주 보광사 대웅전, 안성 청룡사 대웅전, 제천 신륵사 극락전, 구미 수다사 명부전 등에 벽화로 남아 있다.
특히 파주 보광사 반야용선도는 구품왕생의 연화화생도와 함께 배치해서 극락왕생의 보편적인 표현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희귀한 사례다.
그리고 자연의 바위로 반야용선을 경영한 사례도 있어 이채롭다.
창녕 관룡사 용선대(龍船臺)와 순천 조계산의 배바위가 대표적이다. 가공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배바위는 거시적 반야용선으로 거룩한 종교적 생명력을 부여 받는다.
광대한 허공 속에 운용한 까닭에 스케일이 담대하고 드라마틱하다.
특히 관룡사 용선대의 경우에는 배의 선실에 해당하는 바위 부분에 석조여래를 모셔 반야용선의 조형적 뜻을 실현함으로써 무시무종의 거대한 자연 법당을 펼쳐 놓았다.
부처님이 계신 반야용선을 실제로 타볼 수 있는 주 체험의 공간으로 대자연 속에 운용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가장 일반적이며 전형적인 양식은 법당 건물 그 자체를 지혜의 배로 상징화 한 것이다. 법당 어간 좌우기둥 머리에 용두를 얹어 법당을 부처님께서 상주 하시는 반야용선의 선실로도 삼은 것이다.
고흥 금탑사 극락전과 구례 천은사 극락보전이 그 전형에 가깝다.
그런데 몇몇의 법당은 반야용선으로 표현하는데 보다 적극적인 의지를 드러낸다. 법당 기단부를 바다로 구체화해서 반야용선의 의미를 한층 강화하는 사례다.
화강암 기단부에 거북이나 게, 물고기 등의 바다생물 조형을 무심히 새겨서 상징성을 생생히 부여하는 방식이다.
식물 소재로 연꽃도 적절히 활용하기도 한다. 해남 미황사 대웅보전과 여수 흥국사 대웅전 등에서 그러한 조형의지를 읽을 수 있다.
사실 해남 미황사의 경우는 사찰의 연기설화 그 자체가 극락정토에 닻을 내린 반야용선의 서사다. 미황사 기둥 초석에는 거북, 게, 연꽃 조형이 나타나고, 여수 흥국사 대웅전 기단부에는 거북, 게, 해초 조형을 새겨 두었다.
대적사 극락전 건물기단은 거대한 바다를 그려 놓았다.
대적사 극락전은 생명력 충만한 화엄세계의 건축기단으로 만들었다.
법당 기단에 바다생물이 등장하는 사찰은 해남이나 여수, 울진 등 세 지역 모두 바다를 끼고 있는 해양성의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내륙 깊숙이 자리하는 절의 법당에서도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있어 흥미를 끈다.
청도 대적사 극락전이 그런 경우다. 대적사 극락전에서 먼저 눈에 띄는 대목은 아름다운 기단시설이다.
축대의 계단은 소맷돌을 갖추었다. 향좌측의 소맷돌에는 나선형으로 돌돌 감은 넝쿨문양과 커다란 잎을 두텁게 돋을새김 했다.
돌돌 말은 넝쿨은 생명력의 강한 응축으로 생명의 연속성을 담지한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짙은 암갈색의 재질에서 묵직하고 두터운 힘이 우러나온다. 바로 보아서 우측의 소맷돌에도 생명력의 기운이 넘친다.
용틀임으로 꿈틀대는 용과 나선형 문양, 연꽃 봉오리, 두 마리의 거북이 등이 마치 선사시대 암각화를 보듯 투박하고 고졸하게 새겼다.
용의 표정과 거북이의 동작에서 천진난만함이 가득하다. 아이들 그림처럼 꾸밈없이 순수하면서도 화면의 분위기는 초등학교 운동장처럼 명랑하기 그지없다.
나선형 넝쿨문, 연꽃 봉오리, 거북, 용틀임의 용 등을 통해 이 기단부의 세계가 생명력으로 충만한 화엄의 세계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기단부의 면석은 막돌이나 장대석이 아니라 석탑의 기단부처럼 면석으로 조합해서 매우 독특하다.
좌우 기단부 면석의 기본문양은 두텁게 가로 지르는 수평선 하나에 일정한 간극씩 수직선을 내려 평면을 분할하고 있는 형태다.
수평선과 수직선의 가장 간결한 형태로 기본문양을 얼기설기 대충 짜두었다.
칸딘스키는 〈점, 선, 면〉에서 수평선은 차고 무한한 움직임 중에서 가장 간결한 형태이고, 수직선은 따뜻하고 무한한 움직임 중에서 가장 간결한 형태라고 하였는데, 이 곳의 수평선과 수직선은 체감을 유도하는 어떤 인위적이며 작위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다. 비뚤비뚤하고 들쑥날쑥한 것이 엄격함이라곤 조금도 찾아 볼 수 없다.
또 기단암석의 색상은 기존의 화강암과는 달리 암갈색과 짙은 회청색 덩어리를 규칙 없이 요리조리 배열했다.
불규칙적인 색과 선의 조합에 의한 H자 면 분할에서 만도 구성의 생동감과 활력이 생기는 희한한 현상이 나타난다.
노자(老子)의 〈도덕경〉 45장에 그 구절이 나온다. 대직약굴 대교약졸 대변약눌(大直若屈 大巧若拙 大辯若訥)이라 했다.
아주 바른 것은 굽은 듯하고, 기교가 뛰어난 것은 서툰 듯하며, 뛰어난 언변은 어눌한 듯하다. 대교약졸의 이치를 담담히 구현하고 있다.
선과 선의 교차점이나 면석에 커다란 꽃, 단순한 원형, 혹은 꽃잎 모양의 조형을 새기자 면석은 연방 꽃밭으로 활력을 갖춘다.
게다가 바다게의 집게발에 쫓기는 듯한 어린 거북이와 그를 보호하려 새끼발을 물고가는 어미의 등장은 동화적인 천진함과 민화풍의 익살을 고양시킨다.
기단에 동화의 판타지 세계와 익살스럽고 낭만적인 민화의 세계가 어우러져 있다. 반야용선이 가진 판타지의 무대장치가 구축되어 있는 셈이다.
건물로는 극락전과 삼성각 · 향각 · 천왕문 · 요사채 등이 있다.
대적사 극락전 내부벽화에는 인로왕보살과 지장보살을 모셔 법당의 반야용선적 성격을 암시하고 있다.
이것은 대적사 극락전이 반야용선으로 적극적으로 운용되었다는 사실은 법당 내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바로 보아 좌측의 벽화는 여러모로 주의를 끈다. 극락으로 가는 길을 인도하는 보살의 주체는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이다.
‘인로왕’이라는 말 자체가 길을 인도하는 최고의 길잡이라는 뜻이다.
인로왕보살은 반야용선의 선두를 맡는다. 길의 인솔자이므로 형형색색의 천이 나부끼는 번을 들고 계신다.
지장보살, 혹은 관세음보살은 배의 선미에서 안전운행의 자비력을 발휘하신다.
벽화에서는 번을 든 인로왕보살과 육환장, 보주를 든 지장보살을 신령한 구름 속에 나란히 모셨다. 두 보살의 벽화는 극락전 법당이 반야용선의 방편이기도 함을 불교의례 양식으로 보여준다.
거인의 힘을 통한 극락왕생의 방식으로 극락전 내부 벽화 중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장엄은 거인이 도자기 대접 같은 그릇에 다섯 명의 사람을 하늘 높이 들어 올리고 있는 장면이다.
벽화 속 거인은 두 분이다. 좌청룡 우백호를 염두에 둔 듯이 각자 청색과 흰색 옷차림을 하고 그릇을 들고 있는데, 흰 옷의 거인의 그릇은 비어 있다.
아라한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성스러운 구름 속 하늘사람임은 분명하다. 도대체 이 거인들은 누구시며, 무슨 역할을 하고 계시는 것일까?
이 벽화는 대단히 극적인 장면을 묘사하고 있음은 틀림없어 보인다. 벽화 바로 위 나무결 따라 한 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은 채도 높은 길상화를 베풀었고, 또 그 위 좁은 상벽에는 율동적인 비천벽화를 조영한 까닭이다. 그것은 상서의 장면을 상징하는 보조관념들이다.
반야용선의 개념으로 보면 도상의 의문은 풀린다. 벽화를 조영한 예술가는 왕생자를 극락으로 인도하는 방식에서 대단히 창의적인 방식을 발상해냈다. 용선(龍船)이라는 배의 수단을 빌리거나 연화화생의 일반적인 방식을 취한 것이 아니라 거인이 하늘로 단숨에 들어 올려주는 방식을 착안했다.
반야용선의 용 대신에 거인의 변화신을, 배 대신 그릇을 대체하면 된다. 인로왕보살과 지장보살은 변함없이 함께 동행 하신다.
반야용선이 수평적 운동의 항해라 한다면, 거인을 통한 왕생은 수직적 차원을 뛰어넘는 방식이라 할 것이다. 선례가 없는 독창적인 벽화장엄이다.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으로 가는 길은 반야바라밀의 길이다. 지혜의 뗏목을 타고 고해의 바다를 건넌다.
대적사 극락전의 고졸한 뗏목에서 무생법인(無生法忍)의 한 줄기 희망의 빛을 푸르름 속에서 보게 될 것이다.
극락전 내부 중앙 본존불 위에는 아주 형식화되고 간략한 형태의 닫집을 설치하였고, 천장은 연화문과 가상적 오판화(五瓣花)인 보상화문의 단청(丹靑)을 하고 화려한 공포의 배치와 용머리 장식 및 구름 문양의 조각 등 전각 가구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대적사 계단 좌우 소맷돌 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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