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용문사(예천 龍門寺)
경북 예천군 용문면 내지리에 있는 절이다.
예천읍에서 북쪽으로 15km 정도 떨어진 소백산 기슭에 위치하며, 신라 경덕왕 10년(870)이 고장 출신의 두운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로 유명하다.
용문사 명칭에는 2가지의 유래가 있는데 “고려 태조가 삼한 통일을 위하여 두운대사를 방문코자 동구에 이르니 바위 위에서 청룡 2마리가 나타나 인도하였다” 하여 절의 이름도 용문사로 불렸다.
고려 명종 원년(1171)에 태자의 태를 절의 왼쪽 봉우리에 묻고 청기사로 고쳤다가 다시 소백산 용문사(龍門寺)로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려 시대에 수백 명의 승려가 상주하였고 여러 차례 외침을 당할 때마다 ‘일만승제 삼만승제(一萬勝祭三萬勝祭)’를 올려 국난 극복을 위해 기도했으며, 규정원으로 승병을 훈련하던 곳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엔 승군의 짚신을 짜서 보급하던 곳으로 호국불교의 장이기도 하다. 척불숭유의 정책을 폈던 조선 시대에도 용문사는 왕실로부터 대접을 받아 1457(세조3)년에는 왕이 잡역을 감해주라는 명을 내렸는데 그 교지가 보물 제729호로 지정되어 전해오고 있다.
1478년(성종9)에는 소헌왕비의 태를, 1783년(정조7)에는 문효세자의 태를 안장했을 정도로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산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870년(경문왕 10) 두운조사가 창건했다.
〈사적기 寺蹟記〉에 의하면 936년 태조가 직접 중건했고, 1165년(의종 19) 왕명으로 중수했다고 한다. 1179년부터 15년간에 걸쳐 대대적인 불사가 이루어졌다.
1478년(성종 9) 세종대왕의 비인 소헌왕후(昭憲王后)의 태실을 봉안하고, 절 이름을 성불산 용문사라고 다시 바꾸었다.
1783년(정조 7) 문효세자(文孝世子)의 태실을 이곳에 쓰고 성불산을 소백산으로 고쳤다.
1835년(헌종 1) 화재로 소실된 것을 역파대사가 상민·부열 등과 함께 중건했다.
현존 당우로는 보광명전·대웅전·응향각·응진각·명부전·응진전·회전문·범종루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대웅전(보물 제145호)·윤장대(보물 제684호)·용문사교지(보물 제729호)가 있고, 강희23년(康熙二十三年) 명문이 있는 대장전목각불탱(보물 제989호) 등이 있다.
<용문사 대장전목각불탱>
보물 제989호. 높이 261cm, 너비 215cm. 1684년(숙종 10) 조성된 것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7개의 목각탱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이다.
이 목각탱은 모두 7개의 조각된 나무판을 이어맞춘 것이며, 하단에 "康熙二十三年甲子季"라는 묵서가 있어 1684년에 조성되었다는 것이 확실하므로 17세기 후반의 불교조각양식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편년자료가 된다.
상하로 긴 장방형 테두리 안에 아미타극락회상도(阿彌陀極樂會相圖)를 표현하고, 테두리 밖에는 구름무늬와 불꽃무늬를 표현한 능형판(稜形板)을 덧붙여 장엄했다.
테두리 나무기둥에는 범자와 만자, 8괘(八卦)를 배치하고 아미타극락회상도임을 나타내는 글귀를 새겨놓았다. 조각면의 중앙에는 본존인 아미타불이 앉아 있는데, 광배는 주형(舟形)광배의 양옆에 날개를 덧붙인 키형광배이며 보상당초무늬가 선각되어 있다.
본존의 머리는 나발(螺髮)이며, 육계(肉髻)의 표현이 분명하고 중앙과 정상부에 계주(髻珠)가 있다. 방형의 얼굴에 이목구비가 극히 형식적으로 표현되어 무표정한 인상이다.
목이 짧고 앞으로 구부정하게 앉은 자세이며, 기둥과 같이 단순화된 신체에 입혀진 통견(通肩)의 법의는 두꺼우며 옷주름이 간략하게 형식적으로 표현되어 조선 후기 불상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특히 본존상은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의 아미타구품인을 하고 있는데, 오른손이 밑으로 쳐져 조각기술상의 미숙함을 보여준다. 본존불의 주위에는 모두 8구의 보살입상이 있고, 아래쪽에는 사천왕이 2구씩 좌우에 있으며, 보살상 좌우에는 무릎을 꿇고 합장한 채 앉아 있는 아난과 가섭상이 있다.
석장(錫丈)을 든 민머리의 지장보살을 제외한 나머지 보살상은 모두 같은 형태의 보관과 천의를 착용했으며, 검·연봉오리·여의·정병·경책·금강저 등 각각 다른 지물(持物)을 들었으나 4등신 정도의 신체비례와 뭉뚝한 기둥형의 신체에 두꺼운 천의표현까지 동일한 양식을 보여준다.
이들 군상 사이로 구름광선을 조각했으며, 군상 위에는 본존의 몸에서 나온 서광(瑞光)과 타방세계에서 온 소불상들을 좌우에 3구씩 배치하여 장엄한 극락회상의 정경을 표현했다. 이 목각탱 앞에 봉안된 목조아미타삼존상 역시 목각탱과 같은 양식을 보여주고 있어 동시대에 조각된 것으로 추정되는 중요한 불상군이다.
<용문사 윤장대>
보물 제684호. 높이 420cm, 둘레 315cm. 경전을 보관하는 일종의 경장으로 대웅전 왼쪽 대장전 안에 불단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1구씩 설치되어 있다.
용문사윤장대(왼쪽), 조선시대의 목조경판고(木造經板庫)로 대웅전 왼쪽 대장전 안에 불단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1구씩 설치되어 있다,
전륜장(轉輪藏)이라고도 부르는 윤장대(輪藏臺)는 내부에 불경을 넣고, 손잡이를 잡고 돌리면서 정토왕생(淨土往生)을 기원하던 의식용 기구의 하나이다.
기본 구조는 마루 밑에 회전축을 세운 뒤, 지도리로 경장을 받치고 지붕 끝을 천장부 가구와 연결하여 대장전 건물과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다. 공포는 겹처마의 팔작지붕에 치밀하게 가구를 짜올린 다포계(多包系) 양식이며, 8면에 모두 문을 달아서 팔작목조건물을 축소한 것처럼 보인다.
아랫부분은 팽이처럼 뾰족하고 한쪽 모서리에 긴 손잡이를 두어 경장을 돌리는 회전의식에 알맞도록 고안되어 있다.
작은 자물쇠고리가 달려 있는 8개의 문은 좌우로 구별되어서 한편에는 정교하게 투조법(透彫法)으로 조각된 꽃무늬 창살이, 다른 편에는 빗살무늬 창살이 달려 있다.
내부는 모두 서가처럼 단을 만들어 경전을 넣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사적기 寺蹟記〉에 의하면 1173년 자엄대사(資嚴大師)가 대장전을 창건했고, 1670년(현종 11) 중수했다고 하므로 이 불교공예품은 중수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윤장대는 경전을 보관하는 장소만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완전한 모습으로 전해지는 것은 이것뿐이어서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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