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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중국

중국 산시성(山西省 왕가대원(王家大院)

by phd100 2014. 7. 14.

● 왕가대원(王家大院)

 

왕가대원(王家大院)은 중국 산시성(山西省) 영석(靈石)현 정승(靜昇)진 진중(晋中)에 위치한 저택이다.

청대(淸代) 링스(灵石) 4대 가문 중 하나인, 징성왕씨(静升王氏) 住宅群의 중심 부분이다.

면적은 4만 5천㎡이며, 차오자다위안(乔家大院)의 4배에 달하는 면적으로 진상(晋商) 중 최대 규모이다. 북방 민간가옥의 전통적 양식과 남방 원림(园林)의 설계를 가지고 있다.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민가 9개 중 첫번째인 왕가대원(王家大院)은 민간의 황궁으로 불리운다.

왕가대원은 규모와 레벨은 물론이고 문화적인 차원과 건물의 장식예술적 차원에서 모두 중국 북방 가옥의 건축예술을 집대성했다고 할수 있다.

 

산서(山西)성 영석(靈石)현 정승(靜昇)진이라는 낯선 도시가 중국 최초의 역사문화도시로 선정된 데는 그 소도시에 바로 왕가대원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수십 채의 뜰을 가진 보루식 건물들이 동쪽과 서쪽 두 구간으로 나뉘어 산세를 따라 첩첩하게 자리 잡고 있다.

높고 낮게 즐비한 건물 들 속에는 우아하고 정교한 석각과 벽돌조각, 목각물이 화려한 수를 놓는다.

 

800여년 전의 원(元)나라 때 정승(靜昇) 왕씨의 조상이 이곳에 와서 농사를 짓는 한편 두부장사를 하면서 부를 축적했다.

청(淸)나라 때인 1673년 왕씨 가문은 청나라 정부군이 반군과 싸우는데 말 24필을 지원해 황제의 표창을 받았으며 그로부터 청정부의 힘을 빌어 더 큰 장사를 벌이게 되었다.

 

그 뒤에는 왕씨 가문에서 과거급제를 통하거나 돈을 쓰는 등 방법으로 벼슬길에 오르기 시작했는데 최고로 정2품직에 오른 사람도 있다.

농사로부터 장사에 이르고 장사로부터 관리에 이른 왕씨 가문은 청나라 중반에 이르러 현지의 4대 갑부로 되었다.

 

왕씨 가문은 장장 500여년 동안 대대적인 공사를 계속해 저택을 신축하고 사당과 패방을 세우며 묘를 조성함으로써 방대한 규모를 형성했다.

왕가대원은 최대 "골목 3갈래, 보루 4채, 사당 5개"를 보유했는데 그 중 현재 개방된 구간은 번성기의 1/4정도에 달하는 골목 1갈래, 보루 2채뿐이다.

 

1) 고가애(高家崖)

대원의 입구는 높은 동문(東門)에 있다. 뜰 두 개를 거느린 보루 고가애(高家崖)는 왕씨 가문의 제17대 손인 두 형제가 살던 저택이다. 왕씨 가문의 번성기였던 1796년부터 1811년 사이에 지은 이 건물에서는 왕씨 가문의 재력을 잘 읽을수 있다.

 

특히 어디서나 볼수 있는 석각과 목각, 벽돌조각은 심원한 의미와 정교한 기법, 기이한 모양, 우아한 품위로 감탄을 자아낸다. 다양한 용도의 뜰이 독립적인 공간을 형성하면서도 다른 뜰과 연결되어 그 속에 들어서면 허와 실이 엇갈리는 미궁에 들어선듯 하다.

 

2) 응서거(凝瑞居)

왕가대원에서 조각이 가장 화려한 곳은 응서거(凝瑞居)이다. 안채의 양쪽에는 희소식을 전하는 말이라는 "비마보희(飛馬報喜)"와 과거급제를 뜻하는 "오자탈괴(五子奪魁)"가 정교함의 극치를 자랑한다.

 

특히 "오자탈괴"의 무늬가 가장 복잡하고 화면에 등장한 모든 요소가 길한 뜻을 내포하고 있다. 활발하게 보이는 어린이들이 과거급제와 경사로움 등을 뜻하는 물건들을 갖고 있는데 그 정교함이 이를 데 없다.

 

응서거의 문에 들어서면 왼쪽에 왕씨 가문의 글방격인 양정서숙(養正書塾)이 있다. 글방은 물론이고 모든 건물의 구석구석에 정교하고 화려한 조각이 즐비해 눈을 어지럽게 한다.

 

오늘날 응서거에는 또한 청나라 때 유명한 서예가의 작품과 청나라 때 지도, 채색의 성지(聖旨)가 보존되어 있다. 드라마에 보면 황제의 칙명을 적은 성지는 대부분 노란색이나 사실 그런것 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3) 홍문보(紅門堡)

고가애에서 석교를 지나면 맞은 편에 홍문보(紅門堡)에 이르게 된다. 역시 청나라때인 1739년과 1793년사이에 지은 이 건물은 축조시간이 더 이르러서인지 조각물은 상대적으로 소박하지만 규모는 더욱 웅장하다.

 

각자 뜰을 거느린 건물들은 주인의 급별에 따라 서로 다른 규모를 가진다. 예를 들어 5품 이상의 관리직을 지낸 집은 뜰도 네 겹이고 장식도 더욱 화려하다.

 

사마원(司馬院)이 바로 그런 뜰이다. 입구에서부터 시작해 관직이 높아진다는 의미의 가관(加官)과 봉록이 많아진다는 진록(進祿), 복이 많다는 증복(增福), 장수를 의미하는 첨수(添壽)로 명명된 네 겹의 뜰을 지나서 뒤로 들어갈수록 복이 많이 받음을 느끼게 된다.

 

홍문보는 높은 곳에서 봐야 그 절묘한 설계를 읽을 수 있다. 길게 모난 보루는 남북향의 중심거리바닥에 커다란 자갈을 깔았고 그 거리 양쪽에 동서향의 골목 세 갈래가 조성되어 한자로 왕(王)자의 모양을 이룬다.

 

그 골목과 골목사이에 각자 뜰을 거느린 저택 네 채가 줄지어 있다. 건물들은 산세를 따라 높고 낮게 첩첩함을 이루며 질서정연하게 보여 똑 같은 잿빛의 기와이고 똑 같은 구도지만 강한 시각적 효과를 보여준다.

 

현재 홍문보에는 왕씨박물관과 서예관, 보물관, 왕씨양조방, 두부방 등 다양한 시설들이 보존되어 있고 특히 왕씨박물관에는 왕씨가문의 보물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왕가대원의 보루에 올라서면 불타는 노을속에 왕가대원이 한 눈에 안겨온다. 발아래 보이는 저 많은 건물들속에 그 옛날에는 왕씨가문의 많은 자손들이 살았지만 흐르는 세월과 함께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한때는 아름다움을 소망하는 조각과 키 높은 소슬대문이 있어도 왕씨가문은 세월속에 사러져 갔고 남은 것은 후세사람들에게 경험과 교훈을 말해주는 조각과 건물뿐이다.

 

 

4) <고가애와 홍문보의 차이>

고가애와 홍문보는 각자 특색이 다르다. 고가애는 가까운 곳에서 자세히 보고 홍문보는 높은 곳에 올라서서 내려 다 보는 것이 좋다. 고가애에서는 사소한 것을 보고 홍문보에서는 웅장한 기세를 읽으며 고가애는 조각이 정교하고 홍문보는 구도가 엄밀하다.

 

왕가대원의 관람은 가이드를 따라다니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왕가대원 뒷면의 스토리들을 잘 들을 수 있다. 먼저 가이드를 따라 한 번 둘러 보고나서 자신이 관심하는 곳을 혼자서 돌면 좋은 관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