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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경남

밀양 박시춘생가

by phd100 2021. 9. 13.

 

박시춘 생가

박시춘(1913.10.28-1996.6.30)

본명 : 박순동

대중음악 작곡가로서 1950-60년대 최고의 히트곡을 제작한 작곡가 였으며, 1982년 문화훈장 보관장을 수상.

 

아버지 박남포는 밀양에서 기생을 양성하는 권번(券番)을 운영하였다. 박순동은 어린시절부터 당대의 명창 송만갑, 이동백, 김창용, 이화중선 등의 창과 노랫가락, 판소리 속에서 자랐다 한다. 부유한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일본 유학시절 중학생 신분으로 순회공연단을 따라 다니며 트럼펫, 바이올린, 색소폰, 기타 등 다양한 악기의 연주법을 배웠다.

 

그가 보통학교 다닐 무렵에 중병에 시달리며 아편까지 약으로 쓰던 아버지가 2년 만에 타계하면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였다. 12세 되던 해 어머니에게도 알리지 않고 가출하여 전남 순천읍에서 공연단체나 영화순회 공연단에 가담하여 북을 잘치는 소년 악사가 되었으며, 멀리 만주지망으로 순회공연을 떠날 때 나이 겨우 14살 이었다.

 

이후 유랑극단에서 악기를 연주하다가 시에론레코더의 이서구, 박영호를 만나 작곡가로 입문했다.

 

그뒤 서울에서 새로 조직된 <아리랑 가수단>의 멤버가 되었으며, 이때 구성과 연출을 맡아보던 홍개명(후일 영화감독)이 언제나 봄 같으라는 뜻으로 그의 예명을 박시춘으로 작명해 주었다.

 

데뷔작은 <몬테카를로의 갓난이>, <어둠에 피는꽃>이다. 1935년 <희망의 노래>에 이어 <항구의 선술집>,<물방아 사랑>을 발표하여 인기 작곡가가 되었다. 특히 1938년 남인수가 불러 큰 반향을 얻은 <애수의 소야곡>으로 두 사람은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박시춘은 양복차림에 나비 넥타이를 매고 기타를 연주하고, 남인수는 애절한 곡조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으로 상징되는 <애수의 소야곡>은 서민의 애환을 잘 표현한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 노래로 자리 잡았다.

 

이후 <고향초>,<가거라 삼팔선>,<신라의 달밤>,<비내리는 고모령>,<낙랑 십팔세>,<전선야곡>,<이별의 부산정거장>,<전우여 잘자라>,<굳세어라 금순아><럭키서울>등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했다.

 

약 3,000여곡의 노래와 악상을 남겼으며, 이런 업적으로 박시춘의 등장 자체가 대중가요의 새장을 열었으며, '한국가요의 뿌리이자 기둥' 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태평양 전쟁시기에 지원병으로 참전하는 것이 소원이라는 내용의 <혈서지원>을 비롯하여 <아들의 혈서>,<결사대의 안해>,<목단강 편지>등 친일가요를 작곡한바 있다. 이 가운데 조영암이 작사한<혈서지원>은 '손가락을 깨물어 낸 피로 쓴다' 는 가사를 담고 있으며, 군국가요 가운데서도 친일성이 짙은 노래이다.

 

2008년 민족문화 연구소가 선정한 ‘친일인명사전수록’ 예정자 명단, 음악 부분에 포함 되었고, 박시춘을 기념한 가요제가 친일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한국 전쟁 때는 해군 정훈국 소속으로 참전했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넘어 앞으로 앞으로...’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전중가요<전우여 잘자거라>는 이때 작곡한 것으로, 치열했던 낙동강 전선의 전투와 국군의 북진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한국전쟁 후에 발표한 <샌프란시스코>와 <아메리카 차이나 타운>은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이국 취향의 음악이었다.

 

1950년대는 영화음악 작업을 많이 했고, 영화사를 차려 직접 영화 제작을 하기도 했다. 영화 주제가로는 반야월과 호흡을 맞춘<딸 칠형제>,<남성No.1>,<유정천리>등의 희트곡이 되었다.

1958년에 제작된 <삼등호텔>과<딸 칠형제>는 직접 연출까지 맡았다.

 

박시춘의 작품은 선율이 감각적이고 세련된 점이 특징이다. 이런 점에서 작사자 조영암과는 잘 어울렸다. 뛰어난 기타 연주자이기도 했던 박시춘은 작곡에 대해 매우 진지하여 전주와 간주 부분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1961년 한국 연예협회가 조직 될 때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1982년 대한민국 정부로 부터 문화훈장을 서훈 받았다. 대중가요 작곡가에게는 이때 문화훈장 보관장이 처음 서훈된 것이다.

 

천재작곡가 박시춘 선생이 친일 논란에 휩싸이다니 정말로 놀랍고 안타깝고 서운한 맘 가눌 길이 없다.

정녕 그 시절엔 그렇게 살수밖에 없었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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