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암사(草庵寺)
경북과 충북의 경계를 이루는 소백산은 비로봉(1,493m)과 국망봉(1,421m), 연화봉(1,394m)을 소위 소백삼봉으로 부르며, 이들 봉우리 경북 쪽으로 기슭마다 이름난 절이 있으니 최고봉인 비로봉 아래에는 비로사, 제3봉인 연화봉 아래 희방사, 제2봉인 국망봉 아래 초암사가 있다.
또 소백산에는 많은 계곡이 있지만 국망봉에서 기원하여 서북쪽 한강으로 흐르는 국망천과 남동의 낙동강으로 흐르는 죽계천(낙동강 3대 발원지인 순흥은 초암사에서 국망봉으로 오르는 1.2km 지점에 있다)을 그 으뜸으로 꼽는다.
이 사찰은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풍기 부석사를 세운 뒤, 호국사찰을 세우고자 산수 좋은 이곳에 초막을 지어 임시 거처를 정하고 명당자리를 골라, 초막을 지었던 곳에 절을 지어 초암사라 했다.
초암사는 6.25의 병화를 맞아 쇠락해 있던 것을 이보원 스님의 각고의 노력 끝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소백산의 절경 속에 자리 잡은 청량도량으로 6·25전쟁으로 파괴되어 다시 지은 법당이 남아 있으며, 초암사 삼층석탑과 초암사 동부도, 서부도 등 도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대적광전(大寂光殿)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당우로 화엄전, 비로전이라고도 한다.
삼층석탑 (三層石塔.경북유형문화재 제126호 )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 형식으로 지어졌으며 높이는 3.5m이다.
사각형 지대석 위에 세워진 이중기단의 각 면석에 우주가 있고, 일주씩 탱주를 모각했다.
동부도 (東浮屠.경북유형문화재 제128호)
부도는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봉안한 묘탑이다.
둥근 팔각형으로 고려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2m이다.
서부도(西浮屠.경북유형문화재 제129호 )
서부도는 높이 2m로 동부도보다 늦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초암사 석구의 전설>
초암사(草庵寺)는 소백산 남쪽 기슭의 죽계구곡(竹溪九谷) 상류에 자리 잡은 오래된 고찰로,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는데, 대사가 부석사 자리를 구할 때 초막을 지어 기거하였다 하여 초암사라고 호칭되어 오고 있다.
여기 초암사는 비구니 스님들의 수도 도량으로서, 언제 가보아도 깨끗하게 주변 정리가 잘 되어 있고, 청소도 말끔히 잘 되어 있어 정갈스러운 여성의 솜씨가 돋보이는 사찰이다. 그러나 힘이 미약한 비구니 스님들만이 거쳐하는 수도 도량임으로 좀도둑이 성해서 항상 스님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여 왔다.
지금은 老스님으로 물러나 계시는 보원(普元)스님이 이 사찰의 주지로 계실 때에 좀 도둑을 물리칠 계책을 새우는데, 사냥개의 형상을 돌로 다듬어서 칠성님과, 산신님과, 나반존자님이 계시는 삼성각 처마 밑에 안치 하게 되었다.
개의 형상이 사나워 보이지도 않고, 얌전하게 다소곳이 앉아 있는 모습이지만, 이 개의 형상을 돌로 다듬어 안치한 이래에 거짓처럼 좀도둑이 사라지고 말았다.
전 주지로 계셨던 보원(普元 현 93세)스님은 불경은 물론이거니와 유가의 경전인 주역(周易)의 이치를 터득한 분임으로 이 개의 형상을 안치 할 때에 주역의 이치에 따라서 그 위치와 방위를 정하여 안치 하였기 때문에 좀 도둑이 침범하지 못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개의 모습은 소박해 보이지만 불알을 찬 숫 사냥개의 모습이요, 그 바라보는 방향은 정 북방을 바라보고 있다. 북(北)이라는 방위는 물(水)을 상징 하며, 물이란 소리 없이 스며들어 도둑처럼 침범 하는 것이며, 오행의 색(色)으로는 검은(黑)색 이므로, 검은색이란 마음에 흑심이 생겨 좀도둑이 되어 훔치려는 생각이 드는 이치를 간과하여 북 쪽을 향하여 정면을 응시하는 자세의 개 형상을 돌로 다듬어 안치 한 것이라 한다.
주역의 설괘전(說卦傳)에 간위구(艮爲狗)라고 하였으니 젊은 숫 사냥개를 의미하는 것이오, 감(坎)은 위수(爲水)요 위도(爲盜)라고 하였으니, 북방의 물이란 소리 없이 스며드는 도둑이라는 이치를 응용하여 숫 사냥개가 좀 도둑을 응시하는 형상을 세웠다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