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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경북

경주 감은사지(感恩寺址)

by phd100 2015. 1. 22.

 

감은사지(感恩寺址)

경북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에 있는 절터이다.

감은사(感恩寺)는 신라 제30대 문무대왕이 삼국통일의 대업을 성취하고 난 후, 부처님의 힘으로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이곳에 절을 세우다 완성하지 못하고 돌아가자 아들인 신문왕이 그 뜻을 좇아 즉위한 지 2년 되던 해인 682년에 완성한 신라시대의 사찰이었다.

문무대왕은 죽기 전 내가 죽으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니 화장하여 동해에 장사지낼 것을 유언하였는데, 그 뜻을 받들어 장사한 곳이 바로 대왕암이며 부왕의 은혜에 감사하여 사찰을 완성하고 이름을 감은사라 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현재의 모습은 1979년부터 2년에 걸쳐 전면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얻어진 자료를 통해 창건 당시의 건물 기초대로 노출 정비한 것이며, 아울러 금당의 지하에는 바다용이 된 문무대왕의 휴식을 위한 상징적인 공간을 마련한 특수 구조와 동쪽으로 통로를 만들었다고 하는 흔적도 밝혀 놓은 것이다.

우뚝 솟은 두 삼층석탑은 만들어진 연대가 확실한 통일신라 초기의 석탑으로서 수십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만들어 조립식으로 세운 것으로 전체 높이 13.4m에 이르는 신라 삼층석탑 중 최대의 것이다.

 

절터는 동해에 이르기 직전의 산기슭에 있는데, 거기에는 큰 3층 석탑 2기가 동남으로 흐르는 대종천(大鐘川)을 앞에 두고 서 있다.

 

금당터는 비교적 잘 보존되어, 지표(地表)에는 원형 주좌(柱座)가 각출(刻出)된 1개의 초석이 있고, 곳곳에 사각형 초석(楚石)과 대석(臺石)이 있으며, 금당 마루를 이루었던 장대석 등이 있다.

 

감은사는 남에서부터 중문(中門), 쌍탑(雙塔), 금당(金堂), 강당(講堂) 순으로 배열된 전형적인 쌍탑식가람(雙塔式伽藍)이고, 중문과 강당을 잇는 사방에 회랑(回廊)을 돌렸고 금당과 양측 동서 회랑 사이로 익랑(翼廊)을 두었다.

이 회랑으로 둘러싸인 가람 중심부의 크기는 남북 길이, 동서너비가 74.0×76.0m로 거의 정방형(正方形)이다.

금당은 정연하게 쌓아올린 2중 기단 위에 세워졌으며, 정면 5칸, 측면 3칸이다. 기단의 사방 중앙에는 돌계단이 각각 배치되었고 기단은 턱이 있는 지대석(地臺石) 위에 면석(面石)을 세우고 그 위에 부연이 있는 갑석(甲石)을 얹은 가구식(架構式)이다.

 

금당의 아래에서는 특이하게 지하공간을 이룬 석조유구(石造遺構)가 발견되었다. 이 구조물은 윗면에 남북으로 홈을 둔 사각형의 돌을 정면 6열, 측면 4열로 놓고 이 홈들에 장대석을 끼워 연결하여 귀틀로 하고, 그 위에 동-서 방향으로 장대석들을 마루널처럼 잇대어 깔아 약 60㎝ 높이의 지하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이 공간은 동해의 용이 된 문무왕을 감은사 금당에 들어오게 했다는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기록과 부합되는 것이다.

 

금당 앞 좌우에 남아 있는 석탑은 국보 제112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석탑들은 2중기단 밖으로 탑구(塔區)가 돌려져 있는 3중기단의 형식을 취한 삼층석탑이다.

각 부의 구성이 백제의 석탑과 같이 많은 석재를 사용하였고, 옥개석(屋蓋石) 받침을 5단의 층급으로 표현한 것 등이 목조가구를 모방한 흔적으로 판단된다.

건립연대가 확실하여 현존하는 한국 석탑, 특히 통일신라 초기의 석탑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