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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경북

경주 골굴사(骨窟寺)

by phd100 2015. 1. 26.

 

골굴사(骨窟寺)

경북 경주시 양북면 기림로에 있는 사찰로, 경주에서 동해안으로 약 20k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함월산 불교 유적지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 골굴사는 마애여래불 (보물582호) 과 선무도로 잘 알려져 있어 선무도 총본산이며 보물582호인 마애아미타불이 있는 국내 유일의 석굴사원이다.

 

6세기 무렵 신라시대 서역에서 온 광유성인 일행이 약반전산에 12개 석굴로 가람을 조성하여 법당과 요사로 사용해온 인공 석굴사원이다. 응회암 절벽을 깎아 만든 것으로 한국의 둔황석굴(敦煌石窟)이라 불린다

 

지금 남아 있는 굴은 법당굴(관음굴) 뿐인데 굴 앞면은 벽을 바르고 기와를 얹어 집으로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천장도 벽도 모두 돌로 된 석굴이다. 북쪽 벽에 감실을 파고 부처를 모셨으나 마멸이 심해 얼굴 표정은 알 길이 없다.

 

법당굴 말고는 여러 굴들이 모두 허물어지고 그 형체만 남아 있다. 굴과 굴로 통하는 길은 바위에 파놓은 가파른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정상에 새겨진 마애여래불로 오르려면 자연동굴을 지나게 되어 있다. 오르내리는 길은 안전하게 가드레일이 설치 되어있다.

 

절벽 꼭대기에 새겨진 높이 4m, 폭 2.2m 정도의 마애여래불상은 오랜 풍화로 떨어져나간 부분이 많다. 바위를 이루는 석회암의 약한 성질 때문에 더 쉽게 부서진다고 한다. 지금은 훼손을 막기 위해 비닐하우스 같은 둥근 모양의 투명한 보호각을 설치하였다.

 

주불인 마애아미타불은 동해안의 문무대왕 수중릉을 향해서 조성되었으며, 관음굴, 지장굴, 약사굴, 라한굴, 신중단, 칠성단, 산신당 등의 굴법당이 있고 특히 수천년 전부터 전래된 남근바위와 여궁의 음양조화로 득남을 기원하는 민간신앙이 간직된 설화가 유명하다.

 

골굴사(骨窟寺) 인근에 위치한 기림사 사적기에 의하면 약 1,500년 전 천축국(인도)에서 건너온 光有성인 일행이 함월산 지역에 정착하면서 골굴사와 기림사를 창건히였으며 불국사보다 약 200여년 앞서 세워진 절이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골굴사는 당시 광유스님 일행이 자국의 사원 양식을 본 따서 창건한 전형적인 석굴사원이라고 볼 수 있다.

여러 개의 동굴군으로 형성된 석굴사원은 우리나라에서는 이곳이 유일하지만 중국이나 티벳, 인도 등지에서는 고대 석굴사원의 유적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예컨대 인도의 아잔타와 엘로라 석굴, 티벳의 돈황, 중국의 운강석굴과 용문석굴이 그 대표적인 유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골굴사의 연혁은 확실치 않으나 기림사 사적기에 따르면, 함월산의 반대편에 천생 석굴이 있으며 거기에는 굴이 12곳으로 구분되어 각기 이름이 붙어 있다고 했으니, 골굴사는 기림사의 암자였던 것이 확실하다. 한동안 골굴암으로 불리어 졌다.

 

원효대사가 죽은 뒤 그 아들 설총이 원효의 뼈를 갈아 실물크기만큼의 조상(彫像)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있다. 또 설총이 한때 아버지가 살고 있던 동굴 부근에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골굴사(암)은 원효대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골굴사는 조선 중후기에 화재로 인해 소실된 후 방치되어 오다가 70여년 전 어느 박씨 일가가 상주하면서 태고종에 등록된 사설사암으로 전해져 오다가, 1989년도에 개인에게 매매된 것을 당시 기림사 주지를 역임한 설적운 스님이 다시 매입하여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골굴사로 등록하여 등기 이전됨으로써 현재는 불국사의 말사이다.

 

그리고 골굴사는 신라시대 불교가 처음 유입될 당시 신라인들의 호국불교 정신과 정토적인 이념을 배양한 정신문화의 산실로서 경주 함월산 유역의 성지로 유서깊은 도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