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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 사찰 & 함께 가고 싶은 곳

여행-강원92

철원 월정리역(月井里驛) 월정리역(月井里驛)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홍원리에 있는 기차역이다. 서울에서 원산까지 이어졌던 경원선의 간이역이었다. 신탄리역, 백마고지역(신설) 다음 역으로, 남방한계선에 근접한 최북단에 위치해 있다. 현재는 폐역 상태다. 6·25전쟁 당시 월정리역에서 마지막 기적을 울렸던 객차잔해 일부분과 유엔군의 폭격으로 부숴 진 인민군의 화물열차 골격이 보존되어 있다. 그 앞에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현재의 역사건물은 철원안보관광개발사업의 일환으로 1988년 복원된 것이다. 월정리의 전설 "먼 옛날 이곳은 이름모를 병으로 고생하는 홀아비와 봉양하는 딸이 살고 있었는데. 그딸은 아버지의 병환을 낳게 해달라고 밤마다 달님께 빌었다. 어느날 달님께 빌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 달의 화신이 나타.. 2014. 9. 11.
철원 평화전망대 철원 평화전망대 평화 전망대는 인근의 철의 삼각전망대 앞으로 나무들이 우거지면서 제기능을 잃어 2007년 새로이 준공되었다. 강원도 철원군 중부전선의 비무장지대와 북한지역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로 제2땅굴과 군 막사, 검문소를 재현한 전시물과 비무장지대 사진 등이 갖춰져 있으며, 50인승 규모의 모노레일이 설치돼 관광객들이 쉽게 전망대에 오를 수 있다. 태봉국의 옛성터와 철원 평야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으며, 쌍안경을 통해 북한군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북단의 교회와 사찰이 있다. 물론 군인들을 위한 종교시설이지만, 찬송과 찬불이 북쪽에 까지 울렸으면 좋겠다. 2014. 9. 5.
철원 제2땅굴 제2땅굴 제2땅굴은 북한군이 남한을 침략하기 위해 파놓은 땅굴로 1975년 3월 24일 발견되었다. 제2땅굴은 지하 50~160m 지점에 있고 총 길이는 3.5㎞이다. 땅굴 내부에는 대규모 병력이 모일 수 있는 광장이 있고, 출구는 세 개로 갈라져 있다. 제2땅굴이 발견 될 당시 수색하던 한국군 7명이 북한군에 의해 희생되었다. 이 땅굴을 이용하면 1시간에 약 3만 명의 무장병력이 이동할 수 있으며 탱크까지 통과할 수 있다. 현재 제2땅굴은 철원군(鐵原郡)이 안보관광코스로 운영하고 있으며, 고석정에 있는 안보관광센터에서 패키지로 묶어 여러 곳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매년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다. 2014. 9. 3.
철원 도피안사(到彼岸寺) 도피안사(到彼岸寺) 강원도 철원군 송읍(東松邑) 관우리(觀雨里) 도피동 화개산(花開山)에 있는 사찰이다. 이름만으로도 분위기가 느껴지는 절이다. 우거진 주변 숲이 병풍처럼 둘러진 차분한 분위기로 신라 말 도선국사가 1,500여 명의 향도들과 함께 철불을 조성하고 안치하기 위하여 만든 절이다. 여기에는 도선국사가 건립 · 주조하였다는 3층석탑(보물 223)과 철조비로자나불좌상(鐵造毘盧舍那佛坐像:국보 63)이 있다. 철원은 한국전쟁 때 격전지로 도피안사도 그때 소실되었다. 이후 철불이 발견되고 절이 새로 지어지게 된 사연이 재미있다. 제15사단장인 이명재 장군의 꿈에 불상이 나타나 땅속에 묻혀 있어 답답하다 하였다고 한다. 다음날 전방시찰을 나갔다 꿈에 나왔던 사람을 보고는 안내를 받아 찾아간 곳이 도피안사.. 2014. 9. 1.
철원 노동당사(鐵原勞動黨舍) 철원 노동당사(鐵原勞動黨舍)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官田里)에 있는 옛 조선노동당의 철원군 당사 건물이다. 2002년 5월 31일 등록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었다. 기획재정부 소유이며 철원군수가 관리한다. 1946년 초 북한 땅이었을 때 철원군 조선노동당에서 시공하여 그해 말에 완공한 러시아식 건물이다. 1,850㎡의 면적에 지상 3층의 무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현재 1층은 각방 구조가 남아 있으나, 2층은 3층이 내려앉는 바람에 허물어져 골조만 남아 있다. 1층 구조를 보면 몇 개의 방은 공간이 매우 협소해 1~2명이 사용하였거나 취조실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6·25전쟁의 참화로 검게 그을린 3층 건물의 앞뒤엔 포탄과 총탄 자국이 촘촘하다. 이 건물을 지을 때 성금으로 1개 리(里)당 쌀 .. 2014. 8. 29.
철원 백마고지(白馬高地) 백마고지(白馬高地) 백마고지전투에서 중공군은 1만4천명의 사상자를 내어 중공군 2사단이 와해되었으며 국군9사단은 이전투에서의 승리로 백마부대로 불리게 되었다.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북서쪽으로 약 12㎞ 지점에 있는 해발 395m의 고지로서 군사적 관례에 따라 395고지라고도 한다. 6·25전쟁 때 국군과 중공군이 이 고지를 차지하기 위하여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심한 포격으로 산등성이가 허옇게 벗겨져서 하늘에서 내려보면 마치 백마(白馬)가 쓰러져 누운 듯한 형상을 하였으므로 '백마고지'라고 부르게 되었다. 1951년 7월 정전회담이 시작되어 정전협정이 체결되는 시점의 전선을 군사분계선으로 삼기로 정한 뒤 한국·유엔군과 북한·중공군 양측은 조금이라도 유리한 지역을 차지하기 위하여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백.. 2014. 8. 27.
삼척 죽서루 죽서루(竹西樓: 강원도 삼척시 성내동) 죽서루란 이름은 누의 동쪽에 대나무 숲이 있었고, 그 죽림 안에 죽장사란 절이 있었다는 이유로 죽서루로 이름이 지어졌다. 또한 죽서루 동편에 이름난 기생 죽죽선녀의 유희소가 있었다는 데서 유래한다는 설도 있다. 또한 이곳이 삼척지소의 근원지이라고 안내문에 나타나 있다. 정철 송강의 ‘관동팔경’의 집필지라서 그런지 숙종 41년 삼척부사 이성조가 쓴 ‘관동제1경 죽서루’라는 현판도 걸려 있다. ‘海仙遊戱之所’는 1837년 헌종때 삼척부사 이규헌의 글씨이다. 실제로 아름다운 죽서루의 모습은 루에 앉아서 오십천을 내려 보는 경치가 아니라,바로 오십천 건너에서 봐야만 그 선경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사실 죽서루는 어느 시대에 누가 세웠는지 모른다. 1266년 이승휴가 안집사.. 2013. 11. 19.
영월 김삿갓 유적지 난고 김삿갓 유적지(蘭皐 金─遺蹟地) 조선 후기의 방랑시인 난고(蘭皐) 김삿갓(김병연)의 시대정신과 문화예술혼을 추모하고, 그의 문학적 가치를 재조명하며, 김삿갓계곡을 특색 있는 유적지로 조성하였다.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는 김삿갓 일가가 폐족으로 사면된 후 살던 곳으로, 57세에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에서 객사하자 그의 둘째아들이 이곳 노루목에 묻어 그의 묘소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첫눈에 보아도 외롭기 짝없는 무덤이었다. 그 무덤 앞에는 높이가 두어 자 가량 되어 보이는 묘비가 서 있는데 그 묘비에는 蘭皐 金炳淵之墓 라는 일곱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작가 정비석이 소설 에 나오는 구절이다. 김삿갓의 일생을 살펴보면, 방랑시인 김삿갓(1807~1863)의 본명은 김병연으로, 1807년(순조7년).. 2013. 1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