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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 사찰 & 함께 가고 싶은 곳

여행-경남241

밀양 만어사 만어사(萬魚寺)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리에 있는 사찰이다. 협소한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언덕위에 만어사, 바로 앞에 바위너덜지대가 나타난다. 만어사 입구에서 돌계단을 오른다. 대웅전, 칠성각 앞에는 신라 석탑 형식을 취한 작고 아담한 고려시대 3층석탑(三層石塔: 고려시대의 석탑. 높이 3.7m. 석탑은 현재의 사찰위치와는 떨어져 있으나 석탑의 뒤편에 건물터로 보이는 널찍한 대지가 있어 이곳이 본래의 법당지(法堂址)로 생각되며, 따라서 이 석탑도 현 위치가 원위치로 추정된다.)이 있는데 그 석탑은 대웅전보다 더 큰 요사체에 짓눌려 맥도 못 추는 듯하다. 대웅전과 칠성각 사이의 바위에서 떨어지는 석간수가 있다. 오른쪽 너덜지대 맨위에 자리잡은 미륵전 안에는 용왕의 아들이 변해서 됐다는 높이 5m 높이의.. 2021. 9. 20.
하동 청학동 도인촌 청학동(靑鶴洞) 청학동이라고 하면 예로부터 전해 오던 도인(道人)들의 이상향을 말한다. 전국의 여러 명산에는 청학동의 전설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청학동의 위치는 지리산에 있으며, 예로부터 천석(泉石)이 아름답고 청학이 서식하는 승경(勝景)의 하나로 간주되었다. 오늘날 현존하는 청학동은 지리산 청학동의 유래가 존재해 오던 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지리산 삼신봉(三神峰) 동쪽 능선 아래 해발 800m 고지인 지리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마을이며 도인촌으로, 특정 종교의 신도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종교취락의 성격을 지닌다. 청학동의 가장 큰 특징은 주민들의 종교적 표상에서 잘 나타난다. 청학동 주민들은 모두 강대성(姜大成, 1898〜1954)이 창시한 유불선갱정유도교(儒佛仙更定儒道敎)라는.. 2021. 9. 20.
하동 지리산 삼성궁 삼성궁 (三聖宮) 삼성궁 (三聖宮)은 경남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청학동 도인촌이 있는 골짜기 서쪽 능선 너머 해발 850m에 있다. 삼성궁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론 선국(仙國)안에 삼성궁이 있다. 삼성궁의 정식이름은 지리산청학선원 삼성궁으로, 묵계 출신 강민주(한풀선사)가 1983년부터 33만㎡의 터에 고조선 시대의 소도(蘇塗: 신성 지역으로 국법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를 복원하였다. 궁의 이름은 환인, 환웅, 단군 등 삼성(三聖)을 모신 궁이라는 뜻으로 지어졌다. 돌로 쌓은 궁전이 보는 이로 하여금 압도하게 만든다. 삼성궁은 배달 민족 성전으로 한배임(환인 桓因) 한배웅(환웅 桓雄) 한배검(단군 檀君) 및 역대 나라를 세운 태조, 각 성씨의 시조, 현인과 무장을 모신 신성한 성역이다 또 우리의 위.. 2021. 9. 20.
산청 지리산 대원사 대원사(大源寺) 비구니의 수도장으로 유명한 대원사는 신라 진흥왕 때 연기조사가 처음 지었다고 한다. 그 후 1948년 여순반란 사건으로 불탄 것을 1959년 다시 지었다. 사찰 안에는 대웅전, 사리전, 종각들의 건물과 조선 전기의 대원사다층석탑(多層石塔)이 남아 있다. 대원사 입구 주차장에서 대원사까지 약 2㎞에 이르는 계곡은 산이 높고 물이 맑을 뿐만 아니라 바위틈 사이로 뿜어내는 물과 괴암이 매우 아름답다. 계곡마다 전설이 있는데, - 용이 100년간 살다가 승천했다는 용소, - 가락국 마지막 구형왕이 와서 소와 말의 먹이를 먹였다고 하는 소막골, - 왕이 넘었다는 왕산과 망을 보았다는 망덕재, - 군량미를 저장했다는 도장굴로 불리는 옛 지명이 현재까지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이 밖에도 대원사 주변에.. 2021. 9. 20.
산청 지리산 내원사 내원사(內院寺) 지리산 내원사(경남 산청군 삼장면 대포리)는 신라 태종 무열왕(武烈王) 4년(657년)에 창건되어 덕산사(德山寺)라 이름 하였으며, 진성여왕(眞聖女王) 2년(888년) 무염(無染)국사가 상주(常住)인원이 많은 대중(大衆)의 정진(精進) 처(處)였으며, 만력(萬曆) 37년(1609년) 원인모를 화재로 전소(全燒)된 후 절터는 마을 주민의 전. 답으로 된 것을 1959년 원경(圓鏡)스님이 매입(買入) 덕산사 입지(立地)에 내원사(內院寺)를 창건(創建)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해 오는 얘기에 의하면 불이 나기 전의 덕산사(德山寺)는 신도들이 항상 붐벼 1천여 명의 대중이 상주한 수도정진도장 이었는데, 하도 많은 신도들이 찾아와 북적이자 수도승들은 수도에 정진하기에 힘들 정도여서 사람들이 적게 .. 2021. 9. 20.
산청 지리산 법계사 법계사(法界寺)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지리산 천왕봉(天王峯) 아래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해발 1,400m에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사찰로서 544년에 조사(祖師) 연기(緣起)가 창건하였다. 조선 태종 5년(1405년) 정심(正心)이 중창한 뒤 수도처로서 널리 알려졌으며, 많은 고승들을 배출하였다. 그러나 6·25 때 불탄 뒤 워낙 높은 곳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토굴만으로 명맥을 이어오다가 최근에 법당이 준공되어 절다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법당 왼쪽에 보물 제473호로 지정된 법계사삼층석탑이 있으며, 절 뒤에는 암봉(巖峰)과 문창대(文昌臺)가 있다. 삼층석탑(三層石塔, 보물 제473호) 법당 왼쪽에 위치한 이 탑은 부처님 진신사리가 .. 2021. 9. 20.
산청 지리산 천왕봉 지리산 우리나라에는 지리산 만 큼이나 종교적인 전설이 많은 산은 없다. “옛날 옛적 천신(天神) 딸 성모마고(聖母麻姑)가 지리산에 내려와 반야도사(般若道士)와 결혼하여 8명의 딸을 낳아 모두 무당으로 길러서 조선8도에 내려 보내 각 도의 민속신앙을 낳게 했다”는 전설과 한자로 ‘智異山(지이산)’으로 쓰고 ‘지리산’으로 읽는 것도 ‘대지문수사리보살(大智文殊師利菩薩)이 이 곳 지리산에서 일만여 종류의 서로 다른 신(異神)을 교화 시켰다고 해서 ’智‘와 ’異‘를 따서 ’智異山‘으로 쓰고 ’지리산‘으로 읽는 다고 한다. 해발 1,915m인 지리산은 당나라 두보는 방장산(方丈山)이라 했고, 백두산(白頭山)에서 흘러 내려와 산을 이루었다고 해서 두류산(頭流山)이라 고도 한다. 또한 그 둘레가 8백리나 되고, 산세가.. 2021. 9. 20.
산청 정취암 정취암(淨趣庵) 경남 산청군 신등면 양전리 대성산에 위치하는 신라시대 불교암자로 정취암은 신라 때인 686년(신문왕 6)에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고 하는데, 동해에서 솟아오른 장육금신(丈六金身:아미타불)의 두 줄기 서광을 따라 금강산에 원통암(圓通庵)을, 대성산에는 정취암(淨趣庵)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고려시대(공민왕 재임) 때 중수되었다가 조선시대에 들어 효종 대 화재로 전소되었다. 이후 치헌선사(致憲禪師)가 다시 암자를 중수하였다. 1987년 대웅전, 1995년 응진전, 1996년 산신각을 건립하였다. 이곳에 보관된 산신탱화와 목조관음보살좌상은 경남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정취관음보살을 본존불로 봉안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사찰이며, 정취암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산청 9경 중 한 곳으로 찾는 이가 많다.. 2021. 9. 20.
산청 성철스님생가, 겁외사 성철스님생가(性澈─生家) 경남 산청군 단성면(丹城面) 묵곡리에 있는 성철(性澈:1912~1993)의 생가 와 겁외사(劫外寺)는 한국 불교계에 큰 족적을 남긴 성철이 지리산 대원사(大源寺)로 출가하기 전 25년 동안 살았던 생가 터로, 주변을 포함한 약 8,200㎡ 면적에 겁외사(劫外寺)와 함께 복원하였다. 생가와 관련 건물이 먼저 완공되어 일반에 공개된 뒤, 마무리 작업이 끝난 2000년 10월에 정식으로 문을 열었으며, 2001년 3월 30일 “성철스님생가 복원식 및 겁외사 창건 회향 법회”를 가졌다. 면적 165㎡의 생가는 한옥으로, 안채· 사랑채·유품전시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철의 영정을 모신 안채는 일반인들이 참배하는 공간이며, 사랑채는 외부인이 머물 수 있는 숙소로 지어졌다. 유품전시관에는 그.. 2021. 9. 20.
산청 구형왕릉 산청 傳구형왕릉(山淸 傳 仇衡王陵)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왕산 중턱의 사적 제212호인 “전(傳)구형왕릉”은 진실인가 거짓인가. 전(傳) 구형왕릉이 역사적 사실이라며 구형왕릉 앞에 붙어 있는 접두어 '전(傳)' 자를 떼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이곳은 가야 10대 임금인 구형왕의 무덤으로 전해지고 있는 돌무덤으로, 구형왕은 구해(仇亥) 또는 양왕(讓王)이라 하는데 김유신의 할아버지이다. 521년 가야의 왕이 되어 532년 신라 법흥왕에게 영토를 넘겨줄 때까지 11년간 왕으로 있었다. 이 무덤을 둘러싸고 종래에는 석탑이라는 설과 왕릉이라는 2가지 설이 있었다. 이것을 탑으로 보는 이유는 이와 비슷한 것이 안동과 의성지방에 분포하고 있는데 근거를 두고있다. 왕릉이라는 근거는 『동국.. 2021. 9. 14.
사천 백천사 백천사 경남 사천시 백천동에 자리잡은 사찰로서 1300년 전 신라 문무대왕 시절 의선대사(의상대사의 속세 형제)가 백천사를 처음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몸속법당 부처님을 모시게 된 백천사가 있는 와룡산에는 옛날의 절터가 많기로 유명하다. 구전(口傳)되는 전설로 와룡산에는 팔만구암자(八萬九菴子)가 있었다고 전하는 것을 보면 꽤 많은 사찰(寺刹)이 이 산 속에 들어 앉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진양지(晋陽誌) 등에 나오는 백천사(白泉寺)의 기록에는 '백천사는 와룡산의 서편에 있었다. 도솔암에서 흘러내리는 동쪽계곡은 양구택, 조황담, 백련폭이 그 중 아름다운 곳이요. 선정암에서 흘러 내리는 절의 서쪽 계곡은 세심정, 무금대 등의 좋은 경치가 있고 동서계곡의 상하에 물레방아 16개소가 있었는데 임진왜란 .. 2021. 9. 14.
밀양 표충사 표충사(表忠寺) 경남 밀양시 단장면 재약산(載藥山)에 있는 조선시대 승려 사명대사 유정 관련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通度寺)의 말사이다. 임진왜란 때 승병(僧兵)을 일으켜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사명대사(四溟大師)의 충훈(忠勳)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표충사당(表忠祠堂)이 있는 절이다. 원래 이곳에는 원효(元曉)가 창건한 죽림사(竹林寺)를 신라 흥덕왕 때 황면(黃面)이 재건하여 영정사(靈井寺)로 개칭한 절이 있었다. 표충사라는 이름은 사명대사를 제향하는 사당을 당시 서원(書院)의 격(格)으로 표충서원(表忠書院)이라 편액하고 일반적으로 표충사로 불렀는데, 이 사당을 사찰에서 수호(守護)하여 왔으므로 사(祠)가 사(寺)로 바꾸어진 것이다. 원래의 표충사(表忠祠)는 밀양시 영축산에 있던 .. 2021. 9.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