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충남28 공주 계룡산(장군봉) 계룡산 장군봉(將軍峰: 503m) 충남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에 있는 계룡산 연봉 중의 하나로 장군봉의 명칭 유래는 여러 개가 있는데, 산봉우리가 장군 모양 같다고 하거나 산 모양이 오줌통(장군)을 닮았다고 해서 장군봉이라고 하기도 한다. 사람만한 큰 장군바위가 있었는데, 그 바위를 떨어뜨렸다가 주변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고 해서 장군봉이라 불린다고도 한다. 장군봉은 계룡산 국립공원 동학사지구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높이 약 503m의 봉우리이다. 홍색장석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계룡산의 동쪽 능선 중 하나이다. 서쪽으로는 신선봉(642m), 삼불봉(775m)으로 연결되며, 남쪽에는 동학사계곡이 있다. 장군봉의 동쪽으로는 금강의 지류 하천 중 하나인 용수천이 골짜기를 따라 북쪽의 금강을 향해 흐르고 .. 2021. 10. 20. 논산 개태사2 개태사(開泰寺) 충남 논산시 연산면에 있는 개태사(開泰寺)는 고려 936년(태조 19)에 고려의 왕건이 후백제를 제압하고 세운 사찰이다. 근래에 들어와 수차례 발굴 조사되었는데, 최근 법당 등을 복원한 개태사 구역과 원래의 개태사지로 구분된다. 개태사지는 개태사 석조삼존불입상이 있는 현재의 개태사로부터 북쪽으로 약 300m 떨어진 곳에 있다. 개태사에 전하는 문화재로는 석조삼존불입상과 오층석탑, 철확 등이 있고 개태사지에서는 석조공양보살상과 석조(石槽) 등이 수습되었다. 개태사 마당에 세워져 있는 오층석탑은 개태사지에서 옮겨온 것인데, 원래는 석조공양보살상과 한 짝을 이루고 있었다. 즉 이 석탑 앞에 석조공양보살상이 탑전 공양보살상의 형태로 놓여 있었다. 현재 석조공양보살상은 개태사지 부근에 위치한 용화.. 2021. 4. 15. 논산 송불암 송불암(논산) 송불암은 논산시 연산면 화암리 함박봉에 자리잡고 있다. 연산면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1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자그마한 사찰이다. 태고종 사찰이다. 소나무가 부처님께 절을 하고있는 사찰로도 유명하다. 논산 함박봉의 송불암은 소나무와 미륵부처가 묘한 조화를 이루며 어우러지는 곳이다. 송불암이 위치한 자리에는 본래 고려시대부터 석불사라는 사찰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이후 1946년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신양리에 살았던 동상태의 어머니가 2칸의 민가로 송불암을 창건하였다. 송불암은 1970년대부터 승려 경연이 주지를 맡고 있는데, 송불암이라는 명칭은 미륵불 바로 옆에 있는 250여년 된 노송이 불상과 조화를 이루며 지붕처럼 퍼져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미륵불은 당초.. 2021. 4. 3. 부여 정림사지(扶餘 定林寺址) 부여 정림사지(扶餘 定林寺址)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절터로 사적 제301호이다. 백제 성왕이 538년 봄, 지금의 부여인 사비성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도성 안을 중앙 동·서·남·북 등 5부로 구획하고 그 안에 왕궁과 관청, 사찰 등을 건립할 때 나성으로 에워싸인 사비도성의 중심지에 정림사가 세워졌다. 정림사와 왕궁의 관계는 중국의 북위(北魏) 낙양성(洛陽城) 내의 황궁과 영녕사(永寧寺)의 관계와 흡사하여 사비도성의 기본구조가 북위의 영향을 받았음을 시사한다. 정림사지 오층석탑 1층 탑신 표면에 당나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전승기념비적인 내용이 새겨져 있어, 정림사는 백제 왕실 또는 국가의 상징적 존재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정림사지의 오층석탑(국보 제9호)은 백제인의 감성이 고스란히.. 2021. 4. 1. 부여 정림사지박물관 정림사지박물관(定林寺址博物館)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군립박물관으로 부여의 상징적인 문화유적인 정림사지를 발굴·연구·관리·전시함으로써 백제문화를 재조명하고 지역주민의 문화 참여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종합문화공간으로서 설립되었다. 정림사지는 일제강점기 이후 백제탑공원으로 이용되었으나 1979년부터 시작된 발굴조사에서 사지(寺址) 전모가 밝혀졌으며 사적 제301호로 지정되었다. 이를 연구·관리·전시하기 위해 2006년 9월 정림사지전시관으로 개관하였다. 이후 2008년 5월 1종 전문박물관으로 등재되어 현재 정림사지박물관에 이르고 있다. 상설전시관 2관(백제불교문화관, 정림사지관), 특별전시실 1실, 야외전시실에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연구사업으로 백제문화 관련 사업을 추진 중에 있으며 매년 2.. 2021. 4. 1. 부여 미암사 미암사(米岩寺) 충남 부여군 내산면 저동리에 위치한 나즈막한 계향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서기 602년 백제 무왕 4년에 관륵이라는 스님이 창건한 절인데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할 때 모두 전소되었다가 여러 차례 중건을 거쳐 1997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된 것이라고 한다. 미암사(米岩寺)의 미(米: 쌀 미)가 뜻하는 것은 에 「米 는 천축(인도)에서는 사리(舍利)라 한다. 불사리(佛舍利)가 쌀알과 같으므로 이렇게 부른다.」고 했다. 그러므로 米는 진신사리를 의미하고 따라서 미암(米岩)은 사리로 뭉쳐진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미암사가 최근 일반 참배객인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세계최대 와불이라고 불리는 와불이지만 이전에는 바위에서 쌀이 나왔다는 전설을 지닌 거대한 쌀바위 때문인 것 같다. 사찰 초입을 .. 2021. 3. 29. 부여 무량사 무량사(無量寺) 충남 부여군 외산면에 무량사가 있다. ‘무량’(無量)이라. 셀 수 없다는 말이다. 목숨을 셀 수 없고, 지혜를 셀 수 없는 곳은 바로 극락이니 극락정토를 지향하는 곳이 바로 이곳 무량사이다. 무량사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 걸으면 졸졸 흘러내리는 개울물 소리가 귓속과 마음속에 낀 세속의 먼지를 말끔히 씻어 내며 그대로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듯하다. 어느덧 숲속에 아늑히 자리 잡은 절집에 이르고 있다. 전란으로 크게 불탄 뒤, 17세기 초인 인조 때 대대적인 중창 불사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탑 뒤의 극락전은 우리나라 건축물에서 보기 드문 2층 집으로, 조선 중기 건축물의 장중한 맛을 잘 드러내고 있다. 무량사는 행정구역으로는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에 있지만, 무량사가 자리 잡고있는 만수.. 2021. 3. 29. 서산 팔봉산과 신두리해안 낙조 충남 서산시 팔봉면에 위치한 팔봉산(361.5m)은 산의 형세가 병풍처럼 펼쳐져있고 9개 마을을 품에 안은 듯 정기있게 솟아 있다. 산의 명칭은 여덟 개의 산봉우리가 줄지어 있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8봉중 가장 높은 곳은 3봉으로 높이가 362m이다 산세가 수려하며 맑은 공기와 탁 트인 산세가 절경이며 휴식 및 3시간 정도의 등산코스로 적합하다. 워낙 홍천 팔봉산이 유명해서 이 팔봉산은 앞에 "서산"임을 분명히 밝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이곳은 봉이 9개인데 제일 작은 봉을 제외하고 팔봉산이라 하였고, 매년 12월 말이면 그 작은 봉우리가 자기를 넣지 않았다고 울었다는 전설이 있다. 팔봉산에 관한 기록은 호산록에서 처음 찾아 볼 수 있다. 호산록 기록에 따르면 '여덟 봉우리가 산 위에 나열되.. 2021. 3. 15. 예산 한국고건축박물관(韓國古建築博物館) 한국고건축박물관은 전흥수 대목장이 세계적으로 우수한 한국고건축의 전통을 전승 발전시키기 위해 사재로 추진한 사업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수덕사 바로 옆인 충남 예산군 덕산면 대동리 인근에 조성된 한국고건축박물관은 2008년 2월10일 국보 1호 숭례문이 방화로 사라진 뒤 숭례문 .. 2018. 7. 21. 보은 삼년산성(報恩 三年山城) 보은읍 동쪽 오정산에 있는 신라시대의 산성이며 우리나라 산성을 대표할 만한 대단한 석축산성이다. 속리산 쪽을 향해 보은 시가를 벗어나자마자 곧 오른쪽으로 삼년산성 가는 길이 갈라진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삼년산성은 신라 자비왕 13년(470)에 쌓았고 소지왕 8년(486)에 이찬 실죽을 장군으로 삼아 일선(지금의 구미시 선산읍 일대)의 장정 3,000명을 징발하여 개축하였다고 한다. 보은은 지증왕 3년(553) 삼년산군이 되었고 경덕왕 1년(742)에는 삼년군으로 바뀌었다. 이때 삼년산 · 삼년이라는 지명이 삼년산성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거꾸로 먼저 이 지역의 이름이 있고 거기서 산성 이름을 붙였을 수도 있다. 어쨌든 『삼국사기』에는 성을 다 쌓는 데 3년이 걸렸으므로 삼년산성이라 했다고 적혀 있다... 2016. 1. 14. 예산 수덕사(修德寺) 가야산 남쪽 덕숭산(德崇山, 495m) 중턱에 자리잡고 있어 누구나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고 수덕사에 얽힌 전설을 알면 다시 가보고 싶어지는 곳이다. 신라 진평왕 21년(599)에 지명법사(智命法師)가 창건하고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중건한 절이다.(또 다른 설로는 백제말 숭제법사(崇濟法師)가 창건하고 고려 때 나옹화상이 중건했다고도 한다.) 조선 26대 고종 때 경허스님과 만공선사(滿空禪師)가 중창한 후로 선종(禪宗) 유일의 근본도장으로 동방제일선원(東方第一禪院) 또는 선지종찰수덕사(禪之宗刹修德寺)로 불리운다. 경내의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창건된 확실한 고려 건축물이다.(1937년 수리 할 때 묵서명(墨書銘)의 발견으로 건축연대가 확인됐으며, 풍기 부석사 무량수전, 안동 봉정사 극락전.. 2016. 1. 13. 예산 1. 상가리 미륵불(上加里彌勒佛) 2. 헌종대왕태실(憲宗大王胎室) 3. 지관 손석우 묘 1. 상가리 미륵불(上加里彌勒佛)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불. 흥선대원군의 생부 남연군 묘 앞 길건너에는 골짜기 가 있는 북쪽으로 돌아서있는 미륵불이 있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182호로 지정된 미륵불로, 돌기둥 모양의 입상(立像)이며 초화(草花) 무늬가 새겨진 보관을 쓰고 있다. 왼손은 배에 붙이고 오른손은 가슴께로 들어 올렸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있으며 코 끝은 없어졌다.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불상 양식을 따랐다. 미륵불이 왜 남연군묘를 등지고 서 있을까? 대원군이 가야사를 불사르고 금탑을 깨부순 데 대해 괘씸하다며 항의조로 돌아서버렸다는 설과 풍수지리설상으로 기운을 조화하기 위하여 북쪽에서 오는 억센 기운을 막기 위해 세운 것이라는 설이 있다. 이미륵불은.. 2016. 1. 13.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