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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 사찰 & 함께 가고 싶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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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빛 스카프(윤항기) 장미빛 스카프(윤항기) 내가 왜 이럴까? 오지 않을 사람을, 어디선가, 웃으면서 와줄 것만 같은데, 차라리,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던들, 이 고통, 이 괴로움, 나에겐 없을 걸, 장미빛, 장미빛, 스카프만 보면은, 내 눈은 빛나네. 걸음이 멈춰지네. 허전한 내 마음을 어떻게 달래볼까? 내게서 .. 2015. 5. 11.
산청 율곡사(栗谷寺) 율곡사(栗谷寺) 경남 산청군 신등면 모례리 지리산(智異山)에 있는 절. 651년(진덕여왕 5)원효(元曉)가 창건하였고, 930년(경순왕 4)감악(感岳)이 중창하였다. 그러나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의 역사는 자세히 전하지 않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이 법당을 중창할 때 어떤 목공이 찾아와 절을 짓는 일을 자청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석 달 동안 다른 일은 전혀 하지 않고 목침만을 만들었으므로 답답하게 여긴 이 절의 승려는, 목공을 시험하기 위하여 목침 하나를 몰래 숨겼다. 그런데 목침 만들기를 다한 목공이 수를 세어 보더니 갑자기 안색이 변하면서 “내 정성이 부족하여 목침이 하나 모자라니 이와 같은 귀중한 법당을 건립할 수 없다.”고 하면서 연장을 챙겨 떠나려 하였다. 그때 승려가 숨겨 놓은 목침을 내놓으면서.. 2015. 5. 8.
완도 예송리(禮松里) 깻돌해변 예송리(禮松里) 깻돌해변 전남(全南) 완도군(莞島郡) 보길면(甫吉面) 예송리(禮松里)에 몽돌 해변이 있다. 대한민국 지도를 보면 보길도가 서울에서 얼마나 먼지 알 수 있다. 완도에서도 배로 갈 수 있지만 해남 땅끝마을에서 가면 30~40분 정도 걸린다. 노화도 ‘산양’ 선착장에 닿는다. 버스나 자가용을 이용하여 노화까지 가면, 보길도 입구에는 붉은색 ‘보길대교’가 노화도와 보길도를 이어준다. 보길대교를 지나 청별항에서 예송리 해수욕장으로 10여분 가면 길가에 예송리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닿는다. 여기서는 날씨가 좋은 날에는 멀리 추자도와 제주도도 보인다. 검은 바둑알 같은 돌로 이루어진 까만 예송리 해변이 발아래 펼쳐진다. 파도소리와 함께 돌멩이 구르는 소리도 들려온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마을 입구에서.. 2015. 5. 6.
부모(유주용) 부모(유주용)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 하고, 둘이 앉아. 옛 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옛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리라. 지금 내 삶이 힘들지라도, 우울함이 가슴 속을 채울지라도, 가슴 속에 슬픔이 가득 .. 2015. 4. 24.
완도 우암 송시열(尤庵宋時烈)글씐바위 우암 송시열(尤庵宋時烈)글씐바위 보길도 동쪽 끝의 백도리 마을 해변 석벽에 글씨쓴바위(글씐바위)가 있다. 글씐바위의 유래는 조선시대 선조 ~ 숙종 때의 대유학자이며 노론의 영수인 우암 송시열(1607 - 1689)이 1689년 (숙종15년 ) 장희빈이 낳은 왕세자 책봉문제의 부당함을 상소하였다가 숙종의 비위에 거슬려 관직이 삭탈된 뒤 제주도로 귀양을 가다가, 보길도 어느 바위밑에 잠간 머물면서 임금에 대한 서운함과 그리움을 시로 새기어 바위에 새겨놓은 것이다. 그때 나이 83세 인데도 임금을 사모하는 마음이 치솟아 손수 글을 새겼다고 하지만 믿어 볼 수밖에... 주민들은 이 바위를 탄시암(嘆詩巖)이라고 했는데 요즘와서 글씐바위라 한다. 우암은 이곳에 며칠 머물면서도 부용동 세연정에는 가지 않았다고 한다... 2015. 4. 24.
마포종점(은방울 자매) 마포종점(은방울 자매) 밤 깊은 마포종점, 갈 곳 없는 밤 전차. 비에 젖어 너도 섰고, 갈 곳 없는 나도 섰다. 강 건너 영등포에, 불빛만 아련한데. 돌아오지 않는 사람, 기다린들 무엇하나. 첫사랑 떠나간 종점, 마포는 서글퍼라. 저 멀리 당인리에, 발전소도 잠든 밤. 하나 둘 씩 불을 끄고, .. 2015. 4. 23.
완도 세연정(洗然亭) 세연정(洗然亭) 보길도(甫吉島)는 완도군 보길면에 속하는 섬으로 완도에서 남서쪽으로 18.3㎞,해남군 땅끝에서 12㎞ 떨어져 있고, 노화도 남서쪽 3.8㎞ 지점에 있다. 조선 중기 문신이며, 시인인 고산 윤선도(孤山 尹善道, 1587~ 1671)가 병자호란 때 왕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울분을 참지 못하고 제주도로 향하다, 보길도의 자연경관에 감동하여 머물렀다고 한다. 보길도는 그가 인조 15년(1631) 51세 때부터 13년간 글과 마음을 다듬으며, ‘어부사시사’와 같은 훌륭한 시가문학을 이루어 낸 곳이다. 또한 그가 섬 안의 바위와 산봉우리에 붙인 이름은 아직도 남아있다. 낙서재 건너 개울가에 연못을 파고 집을 세워 ‘곡수당’이라 하고, 그 건너 산중턱 위에 집을 지어 ‘동천석실’이라 하였다. 계곡.. 2015. 4. 21.
완도 동천석실(洞天石室) 동천석실(洞天石室) 동천석실은 주자학에서 신선이 산다는 선계세상으로 부용동을 한눈에 굽어 볼 수 있으며 낙서재의 정면에 바라보이는 산자락에 있다. 3,306㎡(1,000여평)의 공간에 한칸 정자와 석문, 석담, 석천, 석폭, 석전을 조성하고 차를 마시며 시를 지었던 곳이다. 특히 석담에는 수련을 심고 못을 둘로 나누어 물이 드나들 수 있도록 인공적으로 구멍을 파고 다리를 만들어 '희황교'라 칭하였다. 지금도 석실앞에는 도르래를 걸었다는 용두암과 차를 끓여 마신 차바위가 남아있다. 낙서재, 곡수당에 서 있으면 맞은 편 산에 동천석실이 보인다. 아슬아슬한 절벽위에 서 있는 정자 동천석실 고산이 ‘부용동 제일의 절승’이라 자랑했던 동천석실(洞天石室)은 곡수당에서 나와 상류의 부용동 쪽으로 1.5km 정도 올라.. 2015. 4. 21.
등대지기(오기택) 등대지기(오기택) 물새들이, 울부짖는, 고독한 섬 안에서, 갈매기를, 벗을 삼는, 외로운 내 신세여라. 찾아오는 사람 없고, 보고 싶은 님도 없는데, 깜박이는 등대불만, 내 마음을 울려줄 때면, 등대지기, 이십년이 한없이 서글퍼라. 파도만이, 넘나드는, 고독한 섬 안에서, 등대만을, 벗을 .. 2015. 4. 21.
완도 낙서재(樂書齋)와 곡수당(曲水堂) 곡수당은 낙서재가 오른쪽 위로 바라 보인다. 200m 떨어진 아늑한 곳에 있다. 낙서재란 독서를 즐기며 학문하는 선비의 삶을 상징한다. 낙서재(樂書齋)는 시문을 창작하고 강론하던 곳으로, 동천석실과 마주 보이는 곳에 있다. 주로 이곳에서 많은 책을 쌓아두고 독서하며 자제들을 가르쳤다 한다 풍수지리에도 능했던 윤선도는 보길도의 주봉인 격자봉에 올라가서 형국을 파악하고 그 혈맥이 세차례나 꺽이어 내려오는 곳에 낙서재를 마련했다. "학문이나 글을 하는 것이 가장 즐거움이다"는 뜻이 담겨 있는 낙서재는 윤선도가 인조 15년에 들어와 1670년 돌아가실 때까지 살았던 집이다. 이곳에서 '어부사시사' '오우가' 등 국문학사에 길이 빛날 걸작을 남겼다 보길도는 윤선도에게 있어서 인생의 전환점이자 이상향의 낙원이었던 .. 2015. 4. 16.
영암 도갑사(道岬寺) 도갑사(道岬寺)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도갑사로에 있는 사찰로 전하는 말에 따르면, 이곳 도갑사 자리에는 일찌기 문수사라는 절이 있었고 어린 시절을 문수사에서 보낸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신라 말기에 그 터에 절을 다시 지은 후 도갑사라고 이름붙였다. 고려 때 크게 번창하여 전성기를 누렸으며, 조선 세조 3년(1457) 수미(守眉)대사와 신미(信眉)대사가 중건했다. 해탈문: 도갑사 일주문을 지나 100m 가량 들어가면 국보 50호인 해탈문이 나온다. 조선 성종 4년(1473년)에 지어진 오래된 건물로 건축양식이 대단히 독특하다. 해탈문 좌우 앞쪽 칸에 금강역사상이 다음 칸에는 보물 제 1134호인 문수동자와 보현동자상이 모셔져 있다. 경내에는 1980년에 새로 지은 대웅전과 석조 5층석탑 수미왕사비가 있고, .. 2015. 4. 16.
높은 하늘아(수연) 높은 하늘아(수연) 친구가 생각나고, 고향이 그리울땐, 나는 너를, 본단다. 높은 하늘아. 세상을 한눈으로, 내려다 보는 너도, 혼자 있는, 외로움은 쓸쓸할거다. 아~~~하늘은, 외로워. 아~~~하늘은, 외로워. 외로워. 친구가 생각나고, 고향이 그리울 땐, 나는 너를, 본단다. 높은 하늘아. 아~~~하.. 2015. 4.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