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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 사찰 & 함께 가고 싶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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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진영성냥전시관 진영역철도박물관에서 기찻길을 따라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또 하나의 추억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바로 성냥전시관이다. 유럽에서 1830년대부터 상용화된 성냥은 우리나라에 개항 전후, 실학자들을 통해 전래되었다. 1886년 인천 제물포에 성냥공장이 세워지고 이후 군산과 수원, 마산, 부산 등에서도 성냥을 생산하면서 가정용으로 보급됐다. 불을 피우는 성냥은 금세 가정의 필수품이 되었고, 1950~70년대는 성냥의 전성시대라 할 만큼 많은 성냥들이 제조되었다. 1948년 진영읍에 들어선 김해 1호 성냥공장이었던 경남산업공사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기린표’성냥을 만들던 곳이다. 한때 3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릴 만큼 번성해 주민 대다수가 이 공장 덕분에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나 1980년대 일회용 가스라이터가 보급되.. 2022. 7. 3.
김해 진영역철도박물관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는 폐역이 되었지만 여전히 마을 사람들은 아침저녁으로 주변을 산책한다. 낡은 기찻길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고, 새마을호 객차를 리모델링한 카페에선 삼삼오오 모여앉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어쩌면 그보다 오래 마을의 사랑방이 되어 주었던 대합실은 기차역을 활용한 우리나라 유일의 철도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김해에 자리한 옛 진영역 이야기다. 진영역의 역사는 일본이 놓은 군용철도에서 시작된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 역장들이 배치됐는데, 이들 중 한분이 지금도 유명한 진영 단감을 처음 재배했다고 전한다. 무려 110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진영역은 경전선 복선전철화로 지난 2010년 폐역의 운명을 맞았다. 진영은 물론 김해 사람들의 오랜 추억이 쌓인 기차역은 진영역철도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2022. 7. 3.
강화군 청련사 청련사(靑蓮寺)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고려산(高麗山)에 있는 삼국시대 인도 승려가 창건한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曹溪寺)의 말사이다. 416년(장수왕 4) 인도승에 의해서 창건되었다고 한다. 그 인도승은 진나라를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와서 절터를 물색하였다. 고려산에 이르러 다섯 빛깔의 연꽃이 만발한 연지(蓮池)를 발견하고, 다섯 송이의 연꽃을 꺾어서 공중으로 날려 연꽃이 떨어지는 곳마다 사찰을 창건하였는데, 이 곳에는 청련이 떨어졌기 때문에 청련사라 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기록에는 창건시기를 조선시대 초기로 추정하기도 하는데, 절의 중창에 대한기록은 조선 후기부터 보여지고 있다. 182 1년(순조 21) 비구니 포겸(包謙)이 폐허화된 이 절을 중창하였고, 1906년 비구니 계근.. 2022. 7. 3.
강화 고려산 적석사 와 적석낙조 고려산(高麗山). 적석사 : 고려산은 강화읍(江華邑)과 내가면․하점면․송해면 경계에 있는 산. 높이 436.3m. 강화도 6대산(마니산, 고려산, 봉천산, 혈구산, 해명산, 진강산)의 하나이다. 강화군의 정 중앙 진산이 되며, 고구려 때는 둘레 5.8㎞가 되는 토성을 쌓았다. 꼭대기에 치마대(馳馬臺)가 있어서 연개소문(淵蓋蘇文)이 말을 달렸다고 전하며, 또 적련사(적석사) 동편 돌틈에서 나오는 샘물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영천(靈泉)으로 이 물을 마신 아래 동네에서는 장상(將相)이 많이 난다 하여, 중국의 술사가 쇠말뚝을 우물 가운데 박고 흙으로 메워서 그 기운을 눌렀다고 전한다. 또 신기한 것은 나라에 변란이 일어나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물이 마르거나 물이 흐려지게 된다.(1916 한일 합방, 6․.. 2022. 4. 27.
강화 철종 외가 와 찬우물 강화도령 철종외가(哲宗外家) 철종외가(哲宗外家)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냉정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1995년 3월 1일 인천광역시의 문화재자료 제8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철종(재위1849∼1863)의 외숙인 염보길이 살던 집이다. 철종 4년(1853)에 지은 이 건물은 원래 안채와 사랑채를 좌우로 두고 H자형 배치를 취하고 있었으나, 행랑채 일부가 헐려 지금은 ㄷ자 모양의 몸채만 남아 있다. 사랑채와 안채가 一자형으로 연결되어 있고 안(안채)과 밖(사랑채)의 공간을 작은 담장으로 간단히 분리하였다. 규모는 작으나 예스럽고 우아한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건물이다. 철종외가묘(哲宗外家墓)는 철종외가에서 좌측으로 약 500m 정도 떨어진 길 바로 옆에 있다. 묘역에는 염성화(廉星華)·염덕석(廉德碩).. 2022. 4. 27.
강화 오읍약수 오읍약수(五泣藥水) 강화도 읍내 내성인 북산 진송루 부근(고려궁지 정문을 바라보아 왼쪽 차도길을 5분, 강화 산성 북문 밖)에 오읍약수가 있다. 이곳은 바다 건너 북녘 땅인 개풍군 일대를 마주 바라보는 곳으로서 매년 실향민들의 망향제와 종교단체의 통일축원기도회가 열리는 곳이다. 오읍약수는 고려 고종 때 몽고군이 강토를 침입해오자 왕족과 비빈, 그리고 많은 백성들이 강화도로 피신해 와서 내성을 축조할 때였다. 오랜 가뭄으로 성을 쌓던 장정들이 목이 타서 몹시 허덕이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맑은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더니 큰 바위가 깨지면서 그곳에서 샘물이 솟아 나오므로 장정들이 갈증을 풀게 되었고 그 후 이 약수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아 인근 주민들이 아끼는 약수터가 되었다. ‘오읍(五泣)’이라는 이름은 고.. 2022. 4. 25.
강화 용흥궁 용흥궁(龍興宮) 고려 궁지 주변은 볼거리가 많다. 고려 궁지로 오는 길에 제일 처음 만나게 되는 곳은 유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되어 있는 용흥궁이다. 이 집은 옛 동네노인들 사이에 ‘원범이네 집’으로 불리는 곳으로서, 원범은 강화 도령으로 알려진 철종의 이름이다. 조선 말기 안동 김씨의 세도가 한창일 때 24대 헌종이 자손을 남기지 못한 채 세상을 뜨자 대신들은 똑똑치 못한 왕족 중에서 후계자를 정하여 정사를 손아귀에 쥐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강화도에 살고 있던 이원범이 지목되었다. 영조의 현손인 그가 강화에서 자라게 된 것은 할아버지인 은언군이 신유사옥 때 강화로 쫓겨나 사약을 받고 죽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농부로 전락한 그는 임금으로 봉한다는 대왕대비의 교서도 읽지 못하였다. 이 집은 본래 초가삼간이.. 2022. 4. 24.
강화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대한성공회 강화 성당 용흥궁 바로 위쪽에는 사적 424호로 지정된 성공회 강화 성당이 있다. 고요한 초대 주교가 1900년 축성한 건물로 주도하였다. 전체적인 건축 양식은 한국 정통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배치와 내부 구조는 서양식 바실리카 건축 양식을 응용하여 조화의 아름다움과 토착 정신을 드러나게 하였다. 시간의 섬 중심부를 거닐며 지상의 배 한 척을 본다. 강화읍 내 성공회(聖公會) 강화성당 터는 ‘구원의 방주’ 형국이다. 한옥 건물은 자연스럽게 배의 선실이 된다. 터키 아라라트(Ararat)산 구원의 방주가 떠오른다. 개화기 때, 성공회 초기 선교사들이 이곳 강화도에 한옥 성당을 세운 건 영국 북부 스코틀랜드 이오나(Iona) 섬처럼 신앙의 교두보로 삼으려는 뜻에서였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눈에 익.. 2022. 4. 23.
강화 고려궁지(高麗宮址) 고려궁지(高麗宮址) 강화읍 관청리에는 고려시대 때 이곳에는 궁궐이 있었다. 고려가 몽골군의 침략을 피해 1232년 고려 고종19년에 왕도가 강화로 옮겨졌다. 이때 옮겨진 도읍터가 고려궁지로 원종 11년 환도할 때까지 39년간 사용되었다. 강화도로 천도한 이후 최우는 2,000명의 군사를 동원하여 이곳에 왕궁을 건립하였다. 규모는 작으나 궁궐과 관아의 명칭을 개경의 궁궐과 같게 하고 뒷산의 이름도 송악이라 하였다. 이후 대몽 항쟁기 39년간 고려 왕궁으로 사용하다가 몽골과의 화친 후 고려왕이 개성으로 환도하게 되자 몽골의 요구에 따라 궁궐 건물과 성곽을 모두 파괴하였다. 조선시대의 병자호란 당시 강화성이 청군에게 함락된 사실이 있으며, 그 후 고려 궁터에는 조선 궁전건물(장령전, 행궁, 만령전, 봉선전, .. 2022. 4. 22.
강화, 신비의 땅, 생명의 땅 강화(江華) 신비의 땅, 생명의 땅 강화(江華) ! 강화를 뭘 보러 가느냐고 한다면 당신은 무어라 대답할 건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니산이 있고, 조선말기의 전쟁 터였고, 유명한 고찰 전등사가 있으니까 한번쯤 가볼 만 하지…. 강화, 그곳은 한번쯤 가볼 만한 곳이 아니다. 여러 번 가 봐도 새롭고 신비한 기(氣)와 생명을 매번 느낄 수 있는 곳이다.(그래서 生氣處라고도 한다.) 강화는 경기도 북서쪽에 위치하는 인천광역시에 속하는 군의 하나. 면적 407.86㎢로 한국의 섬들 가운데 다섯 번째로 큰 강화도와 15개의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군청소재지는 강화읍(江華邑) 관청리(官廳里)이다. 본래 고구려 혈구군(穴口郡)이었고 신라시대에는 해구군(海口郡)으로 불리었다. 고려초에 열수(洌水;한강) 어귀가 되므로 .. 2022. 3. 13.
철원 한탄강주상절리 잔도 강원도 철원(鐵原) 6.25 당시 ‘철의 3각지대'로 쇠와 인연이 깊은 철원은 글자 그대로 쇠벌이다. 백제의 수도였던 소부리(所夫里)가 소ᄇᆞᄅ에서 →서울이듯이, 또 신라의 수도 서라벌이 서벌→ 서울이듯이, 그리고 고려의 수도인 개성, 즉 송악(松岳)이 솔부리→소블→ 서울이듯이, 후고구려의 궁예가 세운 태봉국의 수도인 철원 역시 쇠벌→서벌→서울이 된다. 신철원의 남동쪽에는 궁예가 왕건의 군사에게 포위당하자 대성통곡하며, 울었다는 명성산(鳴聲山)을 비롯하여 '어수정' 등 궁예의 슬픈 추억을 지닌 이름들이 많다. 또 철원군 어운면 하갈리는 고려 말기에 시석(矢石)을 무릅쓰고 전장터를 누비며 종횡무진, 외적을 물리쳤던 최영 장군이 태어난 곳이라고 구전 (口傳)되기도 한다. '철혈(鐵血)'의 무장이자 무너져가는.. 2022. 2. 13.
통영 연화도(연화사.보덕암.연화도사,사명대사토굴) ◇연화사(蓮華寺) 사명.연화도사토굴에 대하여 연화사는 1988년 8월에 쌍계사 조실스님이신 오고산 스님께서 창건한 사찰로써 약 1,300여 평의 대지 위에 연건평 120평의 사찰로 대웅전, 9층석탑, 요사채 2동, 진신사리비, 연화사창건비 등이 있다. 지금부터 500여년 전 연산군의 억불 정책으로 한양에서 이곳 섬으로 피신하여온 스님이 부처님 대신으로 전래석(둥근돌)을 모셔놓고 예불을 올리며 수행하다가 깨쳐서 도인이 되셨다. 도인께서 돌아가실 때 유언으로 '나를 바다에 수장시켜 달라'고 고하여 제자들과 섬 주민들이 스님을 바다에 수장하니 그곳에서 커다란 연꽃이 떠올라와 승천하였다고 하여 그 때부터 섬이름을 연화도라고 하였고 돌아가신 스님도 연꽃도인이라 하였다. 그후 사명대사께서 이 섬으로 들어와서 연화도.. 2022. 1. 17.